노 대통령 ‘피곤’, 김정일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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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피곤’, 김정일 ‘뿌듯’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6.10.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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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으로 노 대통령 집권 최고 위기…김정일 ‘주도권’ 확보

‘예고대로’ 북한이 지난 9일 결국 핵실험을 발표한 뒤로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연일 비판의 한 가운데 서있다.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위기”라는 보수진영의 다소 거센 주장도 공공연하게 흘러나올 정도다. 결국 노 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했다.

반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김일성 전 주석의 유훈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친북 좌파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남한의 노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도 북한 때문에 골치아픈 모습이다.

“대북 포용정책 실패했다.”, “아니다. 실패하지 않았다.”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 강행 이후 현 정부, 즉 노무현 대통령이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있는 여론의 다양한 스펙트럼이다. 처음 북한의 핵실험 발표가 나온 직후, 노무현 대통령을 대상으로 제기된 쓴소리의 핵심은 ‘대북 포용정책 실패론’ 즉, 김대중 전 정부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지금의 참여정부가 주장해온 자주외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 관광 등 북한을 상대로 포용적인 외교정책을 펴왔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현 정부의 희망사항과 달리 핵실험을 강행하며 남한을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까닭에 대북 포용정책은 ‘앞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고, 야당과 보수단체에서는 끊임없이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대북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며 노 대통령을 압박하고 공세에 나섰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이 북핵 포용정책이었느냐”고 지적한 뒤, “지금은 (노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해) 제재를 선택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또 “노무현 정부만큼 북한과 대화를 많이 한 정부가 없는데, 북한은 노 정부를 대화가 아닌 이용상대로 이용만 했다”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하자는 것은 결국 제2, 제3의 핵폭탄 제조를 방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불똥은 햇볕정책을 제기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까지 쏟아졌다. 정형근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이 대화와 협상을 통하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작년 9ㆍ19 6자회담 공동합의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그에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로 되어 있어 정상적인 국가라면 핵을 포기했어야 함에도 북한은 보란 듯이 핵실험으로 화답했다”고 지적했다.일부 북한전문가들의 분석도 마찬가지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난 8년간 햇볕정책은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취지와 달리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대북정책 재검토 주장 모락모락

심지어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대북정책의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재천 의원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주도권을 잃은 채 자화자찬, 낙관주의로 일관해왔다”며 “정부는 군사적인 문제는 북미관계로, 인도적인 지원 문제는 남북문제로 인식하며 북미-남북관계의 간극을 메우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자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교체론’를 비롯해 ‘내각 총사퇴’ 주장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교안보라인 교체 요구 목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집권 초기부터 현 외교안보라인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한나라당은 얼마 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뒤부터 공개적으로 인책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지난 12일 통일외교안보 분야 장관의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강경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같은 날 “햇볕정책, 포용정책으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했다면 탈북자 수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늘었다”고 주장하며, 북핵 사태에 따른 ‘내각 총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전장에서 말을 갈아탈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며 부분개각을 시사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도 이미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 경질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그러나 한편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목소리가 제기된 최초의 진원지는 ‘역시나’ 햇볕정책을 도입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앞선 지난 11일 북한 핵실험과 관련, “UN의 대북군사적 제재는 없을 것이고, 대북 경제정책은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전남대 대강당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이 같이 밝히고 “대북 포옹정책을 그만둬야 한다는 해괴한 여론이 돌아다니는데 북한의 북핵실험은 햇볕정책이 아닌 미국이 못살게 굴고 살 길을 열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며 대북 포용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또 “핵 문제의 책임이 북한과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 책임 없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용정책 기조 유지해야 주장도

실제로 북한이 지난 2003년부터 체제보장만을 북핵포기의 전제조건을 내세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전 대통령의 주장은 그렇게 틀린 주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북한의 핵실험은 근본적으로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어쨌든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쪽의 주장은 북한이 비록 핵실험을 강행했지만, 한반도 공동 평화와 변영을 위해선 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밑바탕에서 터져나오는 목소리로도 풀이된다. 그렇다면 이 같은 극과 극의 여론의 중심에 서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우선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실험 발표가 있었던 지난 9일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10일, 노 대통령은 “포용정책이 핵무기 실험을 가져왔는지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한다”고, 다시 말해 꼭 포용정책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말을 던졌다. 대북 포용정책의 포기가 아니라, 일부 수정 및 보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국내적으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비난여론이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노 대통령도 이 같은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최근 “결론을 내리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현재 각계 여론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최근 북한 핵무기 정국이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인 것과 달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실험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 부시 행정부를 코너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일 ‘북한과 핵무기’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핵보유국 북한’을 다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를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나면 미국의 운신의 폭은 급격하게 좁아진다”면서 “여태껏 핵 실험을 했던 어떤 나라도 외부 압력이나 감언이설로 핵을 포기하게 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간 부시 행정부의 대북 외교 자세에 대해서는 “북핵에 관해서라면 무대응이나 임시변통으로 일관하는 데 습관이 돼 있다”며 “북한의 핵 보유 주장을 ‘관심끌기’ 정도로 폄하해 온 탓에, 미국은 협상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는 이중의 손해를 봤다”고 비판했다.

북한, 주도권 쥐고 정면대응 가능성

서방 언론의 지적과 분석대로 우선 북한이 주도권을 쥐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정세를 이끌어 가려는 시도를 계속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만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결의안이 통과하고, 대북봉쇄 등 전방위 압박이 강화될 경우 더욱 위기지수를 높이며 정면대응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북한이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며 “앞으로는 개발한 핵을 써먹는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미압박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북압박에 반발해 정면대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체제 보존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체제 단속 강화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북한의 핵실험으로 남한 내 보수와 진보간 갈등, 그리고 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은 지난 9일 조선중앙TV가 오후 5시 뉴스에서 성공적인 핵실험 결과를 알린 뒤 더욱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한과는 사뭇 대조적이다.북한에 취재진이 들어가 있는 교도통신과 이타르-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북한은 무척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다. 공무원이라고 밝힌 40대 북한 남성은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고, 다른 시민은 “김정일 장군이 지도하는 선군정치의 실력”이라고 말하는 등 언론 보도만을 보았을 때는 ‘핵보유국’이 됐음을 자축하고 있는 분위기다. 즉, 이번 핵실험은 미국을 겨냥한 것만이 아니라 북한 내부 결속용이라는 점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북한 핵실험을 두고 이해 당사자격인 한반도의 남과 북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DJ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해오며 대북 포용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왔던 노 대통령은 북한의 ‘고집’에 ‘우울’한 모드다. 특별한 해결책마저 없는 상황에서 ‘고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 대통령과 대조적으로 급변하는 정세를 관망하며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있을지 모른다.

북한이 잘못했는지, 미국이 대북 정책에서 서툴렀는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잘못됐는지, 확실한 정답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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