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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했다. 주위의 만류도 많았다. 교인들의 반대는 물론 컸다. 교인들은 ‘이용만 당할 것이다’, ‘그런 지저분한 데 가서 뭘 하겠느냐’라며 그를 말렸다고 한다.한나라당은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재접 대표부터 시작해, 황우여 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여러 차례 인명진 목사를 찾아가 “한나라당의 기강을 잡아달라”며 위원장직 수락을 요청했다. 황우여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 “삼고초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번엔 칠고초려라는 신종 용어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한나라당이 인 목사를 영입하기 위해 7차례나 찾아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인 목사는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줬다. 직접 ‘정치권’이라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한 가운데에 섰다. ‘윤리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말이다.“교인들의 뜻을 들어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며 그동안 말을 아끼던 그는 결국 한나라당을 택한 이후, 작심한 듯 수위 높은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한나라당의 잘못된 점에 대해선 ‘그냥 앉아서 말로만 하려고 한다’고 쓴소리를 던지더니,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한나라당이 정권이나 잡은 것처럼 들떠 있는데, 지금 같아선 정권 잡아도 큰일 난다”고 말아붙였다. “한나라당이 변해야 나라가 변한다”, “정신들을 못차리고 엉뚱한 일들을 많이 한다”는 말도 쏟아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윤리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의식한 듯, “한나라당이 쉽지 않은 결심을, 자기들에게 벌주고, 잔소리 하고, 쓴소리 하라고 하는 것을 감내하겠다는 그런 쉽지 않은 결정을 해준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밝힌 대로 윤리위원장으로서 한나라당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앞으로 ‘상식밖’ 행동을 하는 의원에 대한 ‘징계’에 앞장서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한나라당이 다음 대선에서 집권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는 생각인지, 그것도 아니면 혹 정치에 뜻을 두고 있는 것인지, 사실상 불분명하다. 실제 여권과 한나라당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인 목사의 속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더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인명진 목사는 현재까지 추이로 봐서는 한나라당의 변화를 위한 ‘징계’쪽에 더 큰 매력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으로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징계가 되어야 하고, 벌주는 징계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징계를 많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도부의 연대 책임, 공동 책임을 물어서 지도부로 하여금 봉사 활동 등을 하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한나라당의 신뢰가 바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기초의원, 광역의원 등이 도덕적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윤리위원회에 대한 전권을 맡은 만큼, 본인이 직접 앞장서겠다는 것이다.그는 “한나라당이 우리 사회와 정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역할이 중요한 만큼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정당이 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그러나 다른 발언을 들어보면 ‘경우에 따라’ 한나라당이 다음 대선에서 집권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즉 ‘현 정부의 정권 재창출을 지지하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부분도 있어 그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고 있다. 그는 임명장을 받으면서 “지금은 반독재운동을 할 때보다 더 희망이 없는 것 같다”고 말문을 꺼낸 뒤, “현 정부와 같은 사람들이 또 다시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어렵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 인 목사는 지난 24일 KBS라디오에 출연, “현 정부가 참 서투르기가 그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그렇다고 그가 정치에 뜻을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는 현실정치 참여를 묻는 질문에 “정치는 안한다. 다만 이번 실험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그가 결국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 것이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 또한 보내고 있다.어쨌든 그는 “구체적인 것은 차차 생각해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윤리위 구성 과정에 어떤 사람들이 영입되고, 또 어떤 수준의 징계를 쏟아내는지를 지켜보면서 그의 행보를 평가해야 하다는 분석이 높다. 최봉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