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뽑겠다는 건지, 술집 접대부 뽑겠다는 건지”
상태바
“직원 뽑겠다는 건지, 술집 접대부 뽑겠다는 건지”
  • 이재필
  • 승인 2006.11.03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업을 빌미로 성관계 요구하는 일부 악덕 기업 관계자들
[매일일보닷컴=이재필 기자]청년실업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9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청년 실업률이 2년 연속 7.4%로 전체 실업률의 배에 달하고 있다. 금년 대졸자 취업률도 수도권에서 60~70%, 지방에서는 50~6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와 높아져 가는 청년 실업률. 문제는 이같은 어려운 취업난을 빌미로 구직을 희망하는 여성을 성추행, 성폭행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취업을 하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해라.” 비뚤어진 성의식을 갖고 있는 기업인들로 인해 능력있는 젊은 여성들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능력은 필요 없다. 시키는 대로 해라

지난 22일. 인터넷 모 포털사이트 게시판은 회사 면접 시 담당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한 여성의 피해 사례가 올라와 네티즌들의 분노가 드높았다.올라온 글에 따르면 성추행 피해자는 서울 신림동에 사는 김 모(24.여)씨. 김 씨는 면접당시 겪었던 불결한 경험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전했다. 글에 따르면, 지난 10월 초 그녀는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모 건축 관련 사무실에 입사를 지원했고 면접을 봤다.올해 대학을 졸업한 김 씨. 졸업 후 지금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해 가슴을 졸이던 그녀는 이번 취직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김 씨는 외국어 능력을 비롯한 특기, 장점 등 회사에서 바랄법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심산으로 철저히 면접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녀는 사전에 준비한 그 어떠한 것도 면접관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면접관이 김 씨에게 업무와 관련된 그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면접관으로 들어온 박 모 차장이 김 씨에게 질문한 내용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었다. “남자친구는 있나”, “남자친구랑 만나면 주로 무슨 일을 하나”, “남자를 만날 때 성접촉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나” 등 남들에게 밝히기 꺼려지는 내용들을 박 차장은 거리낌 없이 김 씨에게 질문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면접을 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 봤다”며 “일과 내가 남자친구와 만나서 하는 일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당황스러웠던 당시를 글로 설명했다. 하지만 면접관의 황당한 면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씨를 그 자리에서 합격시키겠다고 밝힌 박 차장은 그녀에게 “오늘 기분도 좋은데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제안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황당한 면접에, 황당한 취직. 김 씨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직장상사가 될 사람의 부탁이기에 거절하지 못했다. 부천의 모 술집으로 향한 김 씨와 박 차장.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면접관은 흥이 올라 노래를 불렀다. 김 씨는 앉아서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 한창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박 차장. 그런데 갑자기 박 차장이 김 씨에게 노래 부르기를 권하면서 그녀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었다. 순간 당황해 머리가 서는 느낌을 받았다는 김 씨. 그 녀는 충격에 몸을 떨며 “뭐 하는 짓인가”라며 박 차장을 뿌리치고 술집을 나와 버렸다. 당연히 회사 취직은 수포로 돌아갔다.  김 씨는 “당시 수치심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막강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회사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김 씨는 이어 “직원을 뽑겠다는 건지 술집 접대부를 뽑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같은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이 있을까봐 이렇게 글을 남긴다”고 사연을 밝힌 이유를 설명했다.

성관계는 필수, 일은 옵션?

구직을 미끼로 성추행을 당한 사례는 김 씨뿐이 아니었다. 지난 25일 기자와 만난 이 모(21.여)씨 역시 김 씨와 같은 피해를 당했다. 서울시 여의도에 위치한 모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난 이 씨. 인천시 주안동에 살고 있는 이 씨는 모델이 꿈이다.

경북의 모 대학 모델과에 재학 중인 이 씨.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8월 말, 모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통해 이 씨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모 기획사를 찾았다.

‘가능성 있는 모델을 찾고 있었다’고 밝힌 기획사는 처음 이곳을 찾은 이 씨에게 선뜻 ‘키워주겠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시키는 것은 모든 다 할 것’이라는 각서까지 요구했다. 모델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이 아닌 기획사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이 양은 선뜻 이에 응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기획사의 관계자는 각서를 받은 후 첫 지시로 “모델은 제대로 놀 줄 알아야 한다”며 술자리에 동석 할 것을 요구했다. 이 양은 ‘술 먹는 것 쯤이야’하는 생각에 쉽사리 응했다. 하지만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이 관계자는 대담하게도 이 양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이것쯤’이 아닌 부탁에 황당한 이 양은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냐”며 항의했지만, 관계자는 ‘각서’를 보여주며 “싫으면 기획사에서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모델이 되고 싶었던 이 양.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기획사 관계자의 명령에 따라 성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 성관계를 맺은 이후에도 이 관계자는 이 씨에게 계속 해서 성관계를 요구했다. 모델을 미끼로 자행된 잘못된 성관계. 이 양이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데는 꼬박 두 달이 걸렸다고 했다. ‘키워주겠다’며 이 양을 유린했던 기획사는 두 달이 지나는 동안 이 양에게 모델로서 그 어떠한 방향도 제시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양은 “당하고 나서야 ‘아 내가 멍청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이후 바로 기획사를 나왔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 양은 이어 “(기획사를)그만 두고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찾아보니 해당 기획사에서 또다시 모델 모집을 하고 있었다”며 “사정을 모르는 나와 같은 모델 지망생들이 그들에게 똑같은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불안해했다. 이 양은 현재 자신을 성폭행한 기획사 담당자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준비 중이다.

권력을 이용한 횡포

취업을 빌미로 여성들에게 성적 행위를 요구하는 사람들. 그들의 비이성적 행동에 능력있는 여성들은 수치심과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전문가들은 취업을 빌미로 성적욕구를 채우는 사람들에 대해 권력을 이용한 횡포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정책개발원의 황창연 연구위원은 “취업을 미끼로 성추행을 일삼는 남성들은 성을 볼모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자신보다 아래 사람인 구직 여성들을 유린하는 행위는 있어서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황 위원은 이어 “여성의 성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법적 제재 강화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먼저 형식에만 얽매어 있는 기업 내 성폭력 예방 교육이 실질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인권발전회 전미희 상담원 역시 “취업 여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자가 멋대로 휘두르는 폭력에 여성들이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직급이 자신보다 밑에 있는 사람은 쉽게 대할 수 있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