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 창설 이후 최초 내부 발탁…‘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날까?
“45년 만의 첫 공채 출신 국가정보원장.” 김만복(60) 제28대 신임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는 김승규 국정원장 사퇴 논란 속에 지난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과 함께 초대 수장으로 김종필 부장이 취임한 이래, 45년 만에 공채 출신 가운데 최초로 내부 발탁된 케이스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이와 관련 “김 내정자가 국정원이 탈권위, 탈정치 선진정보기관으로 혁신하고 위상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앞으로 ‘정치적인’ 고려보다는 ‘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길 희망한다는 청와대의 바람을 전한 것이다.
어쨌든 김 신임 내정자가 1974년 중앙정보부에 공채로 첫 발을 내딛은 뒤 32년 만에 조직의 우두머리로 올라 선 셈인데, 여태껏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주로 군 출신이 주류였고 검찰이나 정치인 출신이 적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내부 발탁은 국정원에서 볼 때는 반갑고 경사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국정원 직원들도 내부 인사가 첫 수장으로 발탁됐다는 점에 한껏 고무된 듯한 분위기라고 국정원을 담당하는 언론사 기자들은 전하고 있다.
김 내정자의 프로필을 보면, 국정원 내에서 국내.해외.북한 분야를 모두 거친 점이 눈에 띄는데 이런 까닭에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친 ‘정통 정보맨’으로 그는 외부에 잘 알려져 있다.비록 국정원 내에서 1급자리 주요 실.국장은 거치지 못했지만, ‘멀티플레이어’라는 수사가 붙을 만큼 여러 분야를 거치면서 정보 감각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는 소리다.한때 국내 파트에서 대학가를 담당했으나 주로 16년 넘게 해외 분야에서 일했고 기획, 인사, 예산 쪽에서도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처럼 여러 분야를 경험한 만큼, ‘정무적’ 감각이 탁월하다는 평가도 내.외부적으로 나오고 있다. 실제로 1998∼1999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한 가운데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한 3∼6차 4자회담에 우리측 대표로 뛰었고 2000년 6월에는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평양도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그의 행보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중앙정보부(중정),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국정원으로 조직이 그동안 변화를 가져왔고, 정권도 여러차례 바뀌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국정원 내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했고 또 어느 정도 입지를 갖추고 있었는지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자세히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정통 PK출신인 김 내정자는 현재의 위치에서 추정할 수 있듯,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부산 기장에서 태어나 지역 명문인 부산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 1974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정에 발을 들여놨다.그가 이른바 ‘탄탄대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1급)으로 승진하면서부터다.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탄탄대로
같은 해 11월 이라크 파병안 수립을 위한 제2차 정부합동조사단장 역할을 수행하면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는 후문이 있는데, 이듬해인 2004년 2월 그는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임명됐다. 그가 기조실장이 된 데는 대통령이 직접 그를 적임자로 찍었다는 얘기도 있다.그가 기조실장으로 임명된 뒤 탈정치, 탈권력화와 전문성 및 효율성 제고를 골자로 한 국정원 개혁 청사진인 ‘비전 2005’ 작성을 주도했고,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출범과 운영에도 깊이 관여했다.이를 두고 과거사 반성과 청산이라는 참여정부의 코드에 그가 적합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NSC 사무처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노 대통령의 철학과 대북정책, 이른바 ‘노심(盧心)’을 그가 충분히 읽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그는 지난 4월 1차장으로 한 단계 승진하더니, 6개월여 만에 국정원의 최고 수장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맛보았다.그런데 이처럼 신속한 승진의 배경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과 함께, 권력 핵심의 부산 출신 인사들과 386 실세 인사들의 적잖은 지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세종연구소 파견 시절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연을 맺었는데, 이런 인연도 ‘수직 상승’ 배경에 적잖은 작용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세간의 의혹, 사실과 다르다
김 내정자측은 이런 이유로 언론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코드 인사가 아닐뿐더러 세종연구소 연수 당시 남북관계연구실장이었던 이 장관을 알았을 뿐, 이종석 라인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난 4월 1차장으로 인사이동시, 전임이자 1차장을 역임한 서대원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사를 단행해 내부적으로 잡음이 발생했던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어, 김 내정자측, 즉 청와대의 주장에 의문부호를 던지는 이들이 많다. 서대원씨는 경기고교장과 서울대학장을 지낸 서장석씨의 아들이다.이와 관련 국정원 한 관계자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내정자가 NSC로 영전할 때와 국정원에 승진 복귀할 때도 NSC 사무차장이었던 이 장관의 ‘덕’을 톡톡히 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어쨌든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달 26일 사퇴의사를 밝힌 김승규 전 국정원장의 뜻을 받아들이고, 후임으로 김만복 국정원장을 인선한 것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들은 조직의 운영기조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안보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김 원장과 달리, 김 내정자는 대북 포용정책 전도사인 이 장관과 호흡을 맞춰왔다는 점에서 국정원 운영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 김승규 전 국정원장과 김만복 내정자는 지난 4월부터 인사문제와 권한분배 문제로 원장과 내정사 사이에 갈등이 존재해왔는데 이런 사실은 최근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의 폭로에 의해서 밝혀졌고, 이미 지난 6월부터 김만복 내정자의 후임설이 나돌았던 점을 감안하면, 김 내정자는 ‘정치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설이다.김 내정자, ‘정치화’될까?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국정원 안팎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간첩 사건 수가가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정원의 무게 중심이 이미 김 내정자에게 쏠려버린 이상, 향후 간첩 수사의 확대 여부와 후속 수사 범위가 180도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한나라당은 김 내정자의 발탁에 대해 ‘전형적인 코드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창민 부대변인은 “김만복 내정자는 1급 부서장도 거치지 않고 기조실장으로 발탁되고, 채 1년도 되지않아 1차장이 된 후, 6∼7개월여만에 원장이 되는 인생역전의 주인공”이라며 “‘국정원 개혁’의 좌절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권력기관의 제자리 찾기”라며 “내부 발탁은 국정원이 더 이상 정치기관이 아닌 정보기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라며 세간의 다양한 의혹들을 일축하고 있다.이런 논란 속에서 김 내정자는 험난한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밟게 될 전망이다. 인사청문회는 오는 15일과 16일 ,17일 각각 실시된다. 일단 ‘일심회’ 간첩단 사건과 관련한 국정원의 수사방향 선회 여부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간첩단 사건 수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배경을 비롯해 수사의 지속성 보장 여부 등이 집중 거론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김 내정자가 김대중 전 대통령 재직시절 6.15 남북정상회담 실무책임을 맡은 것과 관련해 대북 불법송금과의 연관성 여부도 따질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와 관련한 입장도 철저히 검증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함께 그가 ‘이종석 라인’으로 분류돼 온 점에 비쳐 ‘코드인사’ 논란도 야당측에서 제기될 전망이다.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가 난관을 예고하고 있다. 야당은 “부적격함을 밝히겠다”며 벼르고 있고, 청와대는 냉담한 반응이다. 과연 내부 인사가 수장으로 발탁되는 일이 국정원에서 처음으로 일어날 수 있을까? 국정원이 모처럼 활기를 띠게 될지, 정반대로 흘러갈지 주목되고 있다.△부산(60) △부산고 △서울대 법대 △주미대사관 정무참사관 △NSC사무처 정보관리실장 △국정원 기조실장 △국정원 제1차장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