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대책 상징’…“정부 정책에 다소 실수 인정한다”로 하차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사무처장을 겸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그동안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기조를 대변해왔다. 때문에 현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 브레인’이라는 소리를 줄곧 들어왔다.
정 보좌관은 특히 청와대 참모진으로서 지난해 8.31 대책 당시 정부의 태스크포스를 이끌며 주요한 부동산 정책 입안에 관여한 까닭에, ‘정문수 보좌관’하면 “8.31 부동산 대책을 사실상 주도한 인물”이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는 그러나 수그러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부동산값 급등’에 대한 브레이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과, 최근 부동산 정책을 진두지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라고 발언하는 등 정부 내 비난 여론에 떠밀려 임명 1년 10개월 만에 도중 하차했다.
물론, 청와대가 극에 달한 정책불신 때문에 막다른 선택으로 부동산팀에 대해 ‘인적쇄신’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비교적 인책론의 외곽에 있던 정문수 경제보좌관의 동반퇴진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가 그동안 8·31, 3·30 등 부동산 정책을 실무적으로 주도해왔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정부가 뛰는 집값을 잡기 위해 연일 쏟아냈던 부동산 정책들이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대 대혼란에 빠져들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세간의 지적은 결국 노 대통령의 ‘경제교사’로까지 불렸던 그를 물러나게 한 배경이 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8.31대책에 대한 ‘신념’은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그는 지난 16일 ‘희망의 씨앗은 자라나고 있습니다-경제보좌관직에서 물러나며’라는 제목의 글을 청와대 브리핑에 올려 “국민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한 가지는, 8.31 정책은 아직 그 효과가 미흡할지는 몰라도 정책 자체의 방향은 올바르다”면서 “정책기조가 앞으로도 견지되어야 할 발향이라 믿는다”고 밝혔다.특히 ‘8.31대책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투기억제를 위한 근본적인 장치들을 구축했을뿐 아니라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을 통해 부동산제도를 합리화, 정상화했고 실수요에 부응한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정책 기조, 앞으로도 견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지난 1년 10개월동안 감기 한번 걸릴 시간여유도 없이 열심히 일했다”며 “이제 담담한 심정으로 다시 자유인이 되어 학교로 돌아간다”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정문수 보좌관이 청와대 경제보좌관으로 임명된 것은 지난해 1월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주영국 대사로 내정된 조윤제 경제보좌관 후임에 정문수 인하대 국제통상물류대학원장을 임명했다. 국제 통상과 금융, 학계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경제 엘리트’인 그를 경제 정책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메신저’로 자리매김 해주길 기대하며 청와대로 호출한 것이다.언론들은 그가 경제보좌관에 임명되자, ‘성장과 분배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인물’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경제부처에서는 ‘경제에 대한 나름의 소신과 철학을 갖춘 인사’라며 ‘바람직한 인사’라고 평가했다.당시 그는 취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 분야에서 일한 만큼 현장의 실물경제에 대해 왜곡 없는 다양한 시각을 대통령께 전달하겠다”고 말해, 당시 오락가락하며 혼란만 커지고 있는 경제 정책이 조금이나마 뒤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을 낳기도 했다.엘리트코스 밟아와…‘경제 엘리트’ 평가
이후 이 회사가 해체된 후 곧바로 외국 유학길에 올라 84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아시아개발은행 법률 자문역을 맡아오다 84년부터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한덕수 경제 부총리와는 경기고 동창에 행정고시 8회 동기일 정도로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보좌관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부임이후 7개월이 지나서부터였다.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던 지난해 8월, ‘8.31 대책’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정책을 움직이는 실세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부동산에서 초과이익을 기대하지 못하도록 투기를 억제하되, 주거 실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급은 지속적으로 확대해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킨다는 내용을 기본방향으로 한 ‘8.31 대책’은 당시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지난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부동산 정책을 변경해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임 초기 ‘사회협약적 부동산 정책을 마련하고’, ‘부동산 투기를 반드시 잡겠다’는 취임 일성을 끝까지 유지하며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강조해왔다.그러나 그의 이 같은 바람과 달리, 결국 ‘부동산 폭등’이라는 현실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한 셈이 됐다. 그가 16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다소 실수도 인정한다”는 말도 남긴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정책 추진 과정, 실수 인정”
그는 지난해 8월 언론재단 초청 포럼에 참석해 “헌법처럼 바꾸기 어려운 부동산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가 이번에 중도 하차함으로서 그의 ‘꿈’은 일단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됐다.‘부동산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자신의 부동산’으로 인해 한때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강남 집값 잡기’로 요약할 수 있는데 부동산 투기 근절과 시장 안정을 위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마련했던 주역 중 한 명인 그가 본인 명의로 양천구 목동에 신고가격 7억 5650만원짜리 47평 아파트와 4600만원짜리 14.6평 오피스텔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올초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밝혀져 여론의 지탄을 받은 것이다.이와 함께 지난해 9월에는 그가 8년째 농지법을 위반하고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며 이중고를 치르기도 했다.당시 KBS는 “정 보좌관이 지난 97년 2월 부인 명의로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의 국도변 농지 680여 평을 구입한 이후 지금까지 이 땅을 방치해 왔다”고 보도했는데 농지법 위반과 함께, 1억원 안팎의 시세차익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투기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