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미국 UPI 통신은 한국의 ‘인기 없는 지도자(unpopular leader)’가 정책 사령탑들의 사의 표명으로 또 다른 타격을 받게 됐다고 긴급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어 “정부는 주택시장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마련하겠다고 거듭 말하고 있지만 부동산 매수 랠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며 “이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성난 민심의 요구를 수용했다. 여론에 떠밀린 인사를 거부해왔던 노무현 대통령은, 성난 민심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 정문수 경제보좌관 등 세 사람의 사의 표명에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봐야 한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했다. 세 사람이 자진해 사의를 표명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청와대가 이를 바로 언론에 공개하고 이들의 사의를 수용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문책성 경질이라는 의미다.
특히 추 장관 외에 청와대 참모인 이 수석과 정 보좌관으로까지 문책의 범위가 확대된 건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더 이상 논란을 키워선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청와대는 지난 15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발표한 후 추 장관이 자진 사퇴하는 형식을 밟으면 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하지만 이런 기류는 지난 14일 오전 들어 돌변했다. 내부 논의 결과 성난 민심을 감안할 때 자칫 추 장관 한 사람만 물러날 경우 상황이 진정되기보다는 오히려 ‘청와대는 책임이 없느냐’는 쪽으로 사태가 확산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브리핑으로 시작된 여론의 비판이 이 수석의 강남 아파트 구입 의혹을 계기로 청와대 참모 전체의 도덕성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상황도 감안됐다. 집값 폭등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부동산 민란’으로 번지는 상황을 차단하고 시장에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주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고 한다.
부동산정책 3人 문책 “민란 수준…더 버틸 수 없다” 백기
“부동산 문제는 북한 핵 문제보다 더 절박했다.”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과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정문수 경제보좌관이 지난 14일 사의를 표명한 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같이 토로했다. 지난달 추 장관의 즉흥적인 신도시 건설 발표 이후 수도권 일대 집값은 ‘고삐 풀린 말’처럼 뛰기 시작했다. 이백만 홍보수석이 지난 10일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지금 집 사면 낭패” “부동산 세력이 문제”라는 글은 부동산 문제에 짓눌린 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여론에 떠밀린 인사를 거부해 왔던 노무현 대통령도 더는 성난 민심의 파도에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초 이라크 파병 문제를 비롯해 북핵 사태 등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갈렸다. 노 대통령이 비판 여론에 개의치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나머지 여론에 실린 지지층의 지원사격 덕분이었다. 특유의 ‘편 가르기’ 전술이 먹혀들었던 것이다.하지만 이번 부동산 문제는 달랐다. 시중 여론은 온통 비난 일색이었다. “민심 이반이 ‘부동산 민란’ 수준”이라는 심각한 경고음이 각종 채널을 통해 청와대에 속속 보고됐다.결국 노 대통령은 ‘버티기’를 포기하고 등 돌린 민심을 달랠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추 장관과 이 수석 등이 사의 표명을 했지만 사실상 문책성 경질 인사인 것은 이 때문이다.청와대 참모진 교체가 이번처럼 문책 성격을 띤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1월 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인사 파문 직후 인사검증 책임을 진 박정규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비서관이 동반 퇴진한 이후 처음이다.이번 인사로 노 대통령이 임기 말 여론을 수렴하는 새로운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일는지도 관심사다. 그동안 극도로 거부감을 보였던 ‘문책성 개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인사가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의 가속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노무현 정부 8·31 부동산팀 전면 교체
이번 인사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팀은 사실상 전면 교체됐다. 실무총책이었던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사퇴했고 부동산팀을 측면 지원하던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도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이들과 함께 옷을 벗었다.
문책인사 막전 막후
노 대통령은 지난달 추 장관의 신도시 발언 파문 직후 제기된 추 장관 교체 요구를 일축했다. 연말이나 내년 초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당에 복귀할 때 자연스럽게 추 장관을 교체하려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 집 사면 낭패’라는 이 수석의 청와대브리핑 글이 지난 10일 발표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 수석의 글이 실린 인터넷 사이트엔 10일 하루에만 수천 건의 비난 댓글이 달릴 정도로 민심의 반발은 거셌다.특히 이 수석이 몇 년 만에 5억 원대에서 20억 원대의 강남 아파트로 ’갈아타기‘를 한 사실이 보도된 지난 13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좀 심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여기에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홍보수석 시절인 2003년 10월 ‘10·29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을 때 강남권 아파트 입주 계약을 한 사실이 지난 14일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부동산 파문이 청와대 깊숙이 번지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부동산정책 책임자인 추 장관 및 정 보좌관과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이 수석을 인책하기로 결정하고 서둘러 사의를 표명토록 했다는 것이 후문이다.청와대 비서진 추가 교체론 고개
부동산 파문으로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과 정문수 경제 보좌관의 ‘경질’ 이후 청와대 내부에 불어오는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 참모들이 느끼는 긴장감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런 움직임은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추가적인 개편과 이를 통한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기류로 발전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