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에 이어 민주당도 내홍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계개편과 관련해 그동안 노선차이를 보여왔던 한화갑 대표와 정균환 부대표가 정면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민주당 내부 분열사태는 전북도당의 갈등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전북도당은 그동안 한화갑 대표가 임명한 엄대우 위원장 직무대행과 정균환 부대표를 도당위원장으로 재추대하려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맞서왔는데, 최근 전북도당이 정 부대표를 “당원에서 제명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당 정균환 부대표가 자신에 대한 전북도당의 ‘당원제명 통보’ 배후에 한화갑 대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표가 정계개편과 관련해 의견을 달리해온 정균환 부대표를 ‘제거’하려 한다는 일종의 ‘음모론’을 제기한 것이다.
정균환 부대표는 지난 23일 CBS 뉴스레이다에 출연, “현 엄대우 위원장 직무대행은 임명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나를 제명하겠다고 나올 수는 없다”면서 “(한화갑 대표가) 뭔가 지시는 직접 안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분위기를 그렇게 풍겨줬기 때문에 이런 불상사사 일어났다”고 말했다.
하루 전인 22일에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직접 열어 “이번 문제는 정계개편과 민주당 진로에 대한 한 대표와의 노선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한 대표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나를 제명하려는 것은 이성을 상실한 폭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대표측은 당원제명 통보는 전북도당의 자체 결정에 따른 것이라며 정 부대표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즉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으로 ‘결백’을 강조하고 있다. 한 대표측도 곧바로 논평을 내고 “우리는 고 전 총리에게 문호를 열어놓고 있으며 환영한다는 입장”이라며, “정 부대표는 고 전 총리를 내세워 당내 분란을 조장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고건 전 총리 영입 두고 갈등
이처럼 민주당 내부 갈등은 표면적으로 전북도당 차원의 문제로 보이지만, 분란의 본질은 정계개편에 대한 두 사람의 이견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건 전 총리 영입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 차이다.
한화갑 대표는 민주당 중심의 정계개편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반대로 정균환 부대표는 고건 전 총리 중심의 정계개편을 주장하며 두 사람은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극한 대립에 빠져들고 있다. 한 대표는 정 부대표가 고건 전 총리 진영에 깊숙하게 발을 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균환 부대표는 이에 대해 “정계개편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한화갑 대표와 나와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혼을 바탕으로 정통성을 살려가는, 그런 바탕 위에서 유력한 대선후보들과 함께 가서 경선해가지고 그 중에서 대통령 후보를 내야 한다”며 고건 전 총리 영입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정 부대표의 이 같은 발언이 사실일 경우, 한화갑 대표측이 고건 전 총리를 적대시해왔다는 얘기로도 풀이돼 만약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이 가시화될 경우, 당내 고건 지지세력과 한 대표 지지세력간에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계개편 앞두고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
한화갑 대표측은 현재 ‘헤쳐모여식 신당창당’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부득이 하게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해야 한다면 나중에 오픈프라이머리 등을 통해 영입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쨌든 민주당이 두 사람의 ‘충돌’로 속앓이를 하고 있어 고건 전 총리의 신당창당 작업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민주당을 일차적인 연대 대상으로 생각해 온 고 전 총리측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민주당 내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균환 부대표가 한화갑 대표를 직접 비난하면서 안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사람은 더욱 멀어지게 됐다”면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회의와 민주당 시절 한 대표는 동교동계 신파, 정 부대표는 동교동계 구파로 분류됐는데, 갈등의 이면에는 오랜 시간동안 정치를 함께 하면서 생긴 ‘감정적 앙금’이 분명히 작용했다는 견해다.
내년 2월 전당대회까지 갈등 지속될까?
이런 가운데 당 내에서는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신당이 만들어질 경우, 오랜 뿌리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주당을 외부인사인 고건 전 총리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갈등이 전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한화갑 대표측과 전북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균환 부대표측간의 주도권 다툼이라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어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입지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두 사람의 주도권 싸움, 아니 민주당 내 ‘권력’ 투쟁이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은 “전북도당 사태를 정치공세로 몰아가기보다 이 문제를 조속히 원만하게 해결하라는 전북도민들과 당원들의 여망을 받들어 즉각 전북도당을 정상화 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