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세우기’ 숙제 안은 헌재 새 수장 이강국 전 대법관
사상 초유의 헌법재판소 소장 공백사태 끝에 이강국(61) 전 대법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전효숙 파문’ 넉 달 만의, 헌재소장 공백 90여일 만의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이강국 전 대법관을 지명했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이날 “노 대통령은 헌재 재판관 및 소장 후보자로 이 전 대법관을 내정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내주초 이강국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변인은 이 전 대법관에 대해 “판사로 재직하는 동안 원칙에 충실한 깔끔한 재판진행과 깊이 있는 판결로 정평이 났고, 사법행정 및 법원 조직관리에 정통하고 헌법관련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분”이라며 “헌법의 보편적 가치와 새로운 가치들을 조화롭게 수용해 헌법을 잘 수호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1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소감을 묻자 “역사와 국민 앞에 떳떳하고, 기대에 부응할지 걱정”이라며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사태’로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전효숙 전 후보자에 대한 미안하고 착잡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달한 것이다.‘사전에 청와대와 의견을 교환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그 점은 나중에 인사청문회에서도 질문이 나올 텐데 자연스럽게 말씀드리게 될 것”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전효숙 후보자의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 때 청와대 전해철 민정수석으로부터 재판관 사퇴 문제 등과 관련한 전화를 받았다고 밝혀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다. 그가 지명될 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래서 이강국 전 대법관이 앞으로 6년간 헌법재판소를 진두지휘할 새 사령탑으로 낙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축하와 환영의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지만, 염려의 목소리도 덩달아 제기되고 있다.‘전효숙 파문’ 속에 국가의 기본인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사태를 국민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강국 전 대법관의 경우 전효숙 후보자와 같은 홍역은 거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효숙에 대해서 무조건 반기를 들었던 한나라당이 일단 “코드인사는 아닌 것 같다”며 크게 반발하지 않고 있어서다.열린우리, 한나라 “환영”
이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와 인연이 없는 호남 출신. 또 법관 시절 중도적인 판결을 해왔다는 점에서 ‘코드 인사’라는 정치적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인사로 손꼽힌다.
보수적 법관에 진보적 인물 평가
보수와 진보로 사람을 구분하는 건 위험
그는 또 “대정부 투쟁을 목적으로 한 노조의 시위는 정당성이 없다”는 등 불법 시위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대 입장 편에 섰다. 그가 진보인지 보수인지와 같은 이처럼 ‘성향’을 따지는 데는 ‘전효숙 파동’을 잠재우고 종합부동산세법과 개정 사립학교법의 위헌 여부 등 쌓인 현안을 풀어내 ‘국가 4부’로서 헌재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나 진보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정도로 ‘판결의 스펙트럼’이 때에 따라 세분화 돼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그는 실제로 “성향이 중도 보수 중 어느 쪽인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을 보수 진보로 나누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며 “어떤 부분은 보수적일 수도 있다. 저 개인의 언행이나 예의범절, 가정사에서 있어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제도 개선에 있어서는 감히 진보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그는 법관 재직시 온화하고 소탈한 성품에 탁월한 법이론과 실무능력을 겸비해 법조 선후배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선비형 법관이라는 평을 들었다. 특히 깔끔한 재판진행과 심혈을 기울인 판결문 작성을 통해 설득력 있는 재판결과를 도출, 재판에 대한 승복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있다.헌법전문가, 헌재 권위 세울 수 있을까
이 지명자는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헌법을 전공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이라는 논문으로 헌법학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또 ‘위헌 법률의 효력’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헌법전문가로 명성이 높다.부친이 전주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한 이기찬 변호사이며, 장남 훈재씨는 고양지원 판사로 재직하고 있다. 투병 중인 부친의 대소변을 10년 이상 받아냈다는 이 지명자는 대법관에 선임되거나 퇴임한 날 가장 먼저 선친 묘소를 참배할 정도로 효심이 깊은 것으로도 알려졌다.‘헌재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정부 들어 정치적 색깔을 띄었고, 정치공방의 중심에 서있는 곳이다. 즉 대통령 탄핵심판, 행정수도 위헌소송, 전효숙 파문 등을 거치면서 권위와 위상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물론 이는 역으로 헌재의 무게감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그러나 지난 2003년 법원행정처장 재임시,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소장 판사들의 동요를 그가 13시간 마라톤 회의 끝에 진정시켜 행정 능력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처럼, 법조계는 상처입은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이강국 전 대법관이 회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와 관련 법원 관계자는 “탁월한 법이론과 실무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 후보자가 국회 임명동의뿐만 아니라 상처받은 헌재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