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에서 3선 도지사에 이르기까지…입지전적 인물”
“현장을 중시하는 야전형 지도자이자 대표적 실용주의자”
“도청 이전, 원자력클러스터, 실크로드 프로젝트 등 업적”
[매일일보 조용국 기자] 25년 자치현장을 나와 대권 도전에 나선 김관용 경북지사. 그는 한마디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야전형 지도자이자, 말보다는 실천으로 승부해 온 실용주의자다.그의 인생은 참으로 기구했다. 요즘 말로 대표적인 ‘흙수저’였다. 그 시기 다들 그랬지만 그의 집은 워낙 가난했고 거기다가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께서 마을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해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던, 정말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자랐다.그는“하도배가 고파 술도가의 술찌끼를 한 움큼 집어먹고 학교에 갔다가 술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선생님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며 그 시절을 자주 회고한다.그러면서 그는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우리 집안 형편을 안타까워하던 이웃에서 나를 꼴머슴으로 달라고 했을 때 눈물을 보이셨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회상하곤 한다.그는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대학에 가는 게 꿈이었지만 형편이 안 돼서 가지 못했고 가난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취직이 확실한 사범학교로 갔다. 이후 그는 19살에 구미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그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출세했다고 자랑이 대단했다고 한다.그러나 그는 교사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영남대학교 야간대학에 입학해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밤에는 학생으로 구미에서 대구까지 열차를 타고 다니며 공부를 해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공직에 입문한 후에는 병무청, 국세청, 청와대를 거치면서 국가운영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가야하는지 여러 가지 많은 경험을 했다. 특히 구미세무서장으로 재직하면서 고향발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고, 또 친구들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95년 초대 민선 구미시장에 출마해 당선된 후 내리 3선을 하게 된다.2006년 민선4기 경북지사에 도전했을 때는 치열한 당내경선에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한나라당 후보로 당당히 뽑혔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3등이었지만, 유일한 무기인 구미시장으로 일한 성적표를 갖고서 도민들을 설득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현장을 중시하는 야전형 지도자이자 대표적 실용주의자”
“도청 이전, 원자력클러스터, 실크로드 프로젝트 등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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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보다는 훨씬 낫다.
한국을 세탁기로 돌린다는 얘기는 또 독재를 하겠다는 사고방식에 다름아니다.
홍준표가 된다면 혼돈의 시대가 도래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