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의 허가로 도봉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하고 있는 ‘서울 도봉서원(道峯書院)’ 하층 발굴현장에서 그동안 탁본의 일부(88자)만 전해지던 영국사 혜거국사비(慧炬國師碑)의 비편(길이 62㎝, 폭 52㎝, 두께 20㎝) 실물이 발견됐다. 발견된 비편의 총 281자 가운데 256자의 해독에 성공하면서, 이제까지 학계에서 혼동해왔던 영국사의 정확한 위치와 건립 시기를 분명히 알아냈다.또한 혜거국사의 정확한 법명도 알아냈다.도봉서원은 선조 6년(1573년)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년)를 추존하기 위해 옛 영국사(寧國寺)의 터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1608년 중건된 후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어내기까지 약 260여 년간 유지됐던 서원이다. 지금은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8호로 지정돼 있다.지난 2011년부터 3년간 진행된 발굴조사 중 도봉서원이 영국사의 일부 건물과 기단을 재활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중심 건물지에서 고려 시대 금동제 금강저(金剛杵,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용구)와 금강령(金剛鈴, 금강저에 붙은 방울)을 비롯해 국보급 청동 불교용구가 77점이나 출토되면서 복원사업도 한동안 중지됐었다. 이후 지난 6월부터 재 발굴 하던중 혜거국사비가 출토된 것이다.지금까지 88자의 비문만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1668)에 탁본으로 전해오면서 실물은 확인되지 않던 혜거국사비의 비편을 판독한 결과, 비석에 쓰인(비명, 碑銘) ‘견주도봉산영국사(見州道峯山寧國寺)~’글자는 지금까지 영동지륵산영국사로 잘못 알려졌던 혜거국사비의 출처를 정확하게 알게 된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또한, 고려 시대 하층유구에서 확인되는 통일신라의 기와(중판선문 기와)와 건물지 기단으로 보아 영국사가 통일신라 시대에는 창건됐음을 알게됐다.이에따라 영국사 혜거국사(慧炬)가 갈양사 혜거국사(惠居, 고려 최초의 국사)와 동일인물로 혼용되어 왔으나 동시대를 함께한 동명이인인 것도 명확해졌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는 현종 9년(1668년) 선조의 아들이며 서화가인 이우(李俁)가 우리나라 금석문의 탁본을 연대순으로 엮은 첩을 말한다.견주(見州)는 양주의 옛지명이며 중판선문 기와는 통일신라 시대 말까지 사용되던 중판으로 타날(두들긴 무늬)된 선문기와를 말한다.혜거국사는 고려 전기 법안종풍을 일으킨 10세기 유학승으로 고려 시대 광종(光宗, 재위 949~975)이 불교를 개혁하고 선교 양종(禪敎 兩宗)을 통합하고자 도입했던 법안종을 고려에 처음으로 전파한 승려로 추정된다.그리고 법안종을 만든 초조 법안문익(初祖 法眼文益, 885~958)의 제자이며 적연국사 영준(寂然國師 英俊潇洒, 932~1014)의 스승이다. 또한, 송나라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는 국왕이 유학 중인 스님에게 사신을 보내어 예로서 맞이하였던 왕사(王師)였으며, 위봉루(威鳳樓)에서 설법한 사실도 전하고 있다.법안종(法眼宗)은 6조 혜능계의 남종선 법맥을 이은 임제, 위앙, 조동, 운문, 법안의 한 종파로 10세기에 법안문익이 만들었다..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은 송나라의 고승 도원(道源)이 1004년에 저술한 역대 부처와 조사들의 어록과 행적을 모은 책을 말한다.영국사의 중건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이 전하는데 지난 발굴조사에서 효령대군이 영국사가 중창될 당시 대시주한 사실이 기록된 기와가 확인된 바 있다. 세종 때에는 진관사(서울 은평구)의 수륙재를 영국사에서 거행하는 것이 논의되었으며, 세조의 축수재를 봉행할 정도로 사세가 높은 사찰이었다.수륙재(水陸齋)는 물과 육지에 헤매는 외로운 영혼을 달래기 위한 불교의 의식이다. 축수재(祝壽齋)는 임금 등의 장수를 빌기 위해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 의식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