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성판윤’은 현 서울시장과 유사한 역할 수행, 실록과 승정원일기 전수조사 결과 총 2,010대 임명
일제강점기 '경성부윤’은 경기도지사 지휘 아래 행정 수행, ‘경성부회 의원’은 제한선거로 선출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조선시대 ‘한성판윤’과 일제강점기 ‘경성부윤’ 및 ‘경성부회’를 다룬 연구서 <조선시대 한성판윤 연구>와 <일제강점기 경성부윤과 경성부회 연구>를 발간했다.조선시대 한성판윤은 현재의 서울시장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성판윤은 조선시대의 서울 행정을 담당하는 한성부 수장이면서 동시에 정2품의 고위 관원 자격으로 국정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오늘의 서울시장이 서울특별시청 수장이면서 국무위원으로 국무회의에 참여하는 것과 유사하다.한성판윤은 대부분 문과 출신이 임명됐다. 문음(門蔭, 공신․고위관료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료로 채용하는 제도) 출신은 공신이거나 왕실과 관련된 인물인 경우가 많았으며 권율·이괄·이완처럼 무과 출신이 임명되는 경우도 존재했다.숙종 때부터 특정 성관의 특정 가문이 한성판윤을 과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안동 김씨 김상헌 가문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19세기 세도정치의 영향으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됐다.품계가 정2품인 한성판윤은 주로 종2품의 품계를 가진 자를 임명했다. 판윤을 역임한 뒤에는 정2품 이상의 관직에 임명되는 경향이 강했다. 즉 판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교체된 후 수평 이동하거나 상위 관직으로 승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일제강점기 '경성부윤’은 경기도지사 지휘 아래 행정 수행, ‘경성부회 의원’은 제한선거로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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