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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경쟁당국이 유지보수 서비스 등 에프터마켓(후속 시장)에서 벌어진 경쟁 제한 행위에 대해 처음으로 날을 세웠다. 씨티(CT)·엠아르아이(MRI) 장비 유지보수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이 경쟁업체와 거래하는 병원에 차별대우한 혐의를 적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다.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일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지멘스, 지멘스헬스케어㈜, 지멘스헬시니어스㈜(이하 지멘스)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를 적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약 62억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는 공정위가 애프터마켓(후속시장)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에 제동을 걸겠다고 발표한 후 나온 첫 제재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멘스는 국내 CT(전산화 단층 엑스선 촬영장치)·MRI(자기공명 영상촬영장치) 장비 판매 점유율 1위를 4년째 기록하고 있는 업체로, 판매 뿐만 아니라 유지보수 시장도 독점하고 있었으나 2013년부터 독립유지보수사업자가 시장에 신규로 진입하면서 독점적 지위가 흔들렸다. 현재 CT, MRI 유지보수 시장 점유율은 지멘스가 90%, 독립 업체가 10% 미만이다.이에 지멘스는 2014년 1월부터 이들 유지보수사업자와 거래하는 병원에 CT와 MRI의 장비 관리와 유지보수에 필수적인 시스템 소프트웨어인 서비스키 발급을 가격과 발급기간, 기능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자사와의 거래를 유도했다.우선 지멘스는 자사와 거래하는 병원에는 고급 자동진단기능을 포함한 서비스키를 무상으로 즉시 제공해주고, 경쟁유지보수업체와 거래하는 병원에는 기초 기능만 있는 서비스키를 유상으로 최대 25일이 지나서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또 지멘스는 병원 측에 2014년 12월과 2015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실제보다 과장된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기기 법령에 따라 CT·MRI의 안전관련 업데이트는 기기를 판매한 지멘스가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지만 경쟁업체와 거래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또 서비스키 없이 유지보수할 수 있는 작업들이 다수 있음에도 경쟁업체와 거래하면 자사의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경고도 보냈다. 이 결과 총 4개 독립유지보수사업자 가운데 2개 사업자가 사실상 퇴출됐다. 특히 지멘스가 서비스키 발급을 최대 25일까지 미뤄 병원이 관련법상 의무인 안전검사를 미루면서 국민들의 건강위협과 직결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이에 공정위는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의료장비 관련 시장에서 발생한 법위반행위인 만큼 적극적인 시정명령을 내렸다. 병원이 유지보수에 필요한 서비스키를 요청하면 24시간 이내에 최소의 행정비용으로 이를 제공토록 했다. 다만 제공 대상은 환자 및 장비사용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필수 소프트웨어에 한정했다. 이 같은 조치로 CT·MRI 유지보수 시장의 진입장벽이 보다 완화되고 병원은 운영비용을 절감해 장기적으로 환자의 안전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신영호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향후 조치로 “안전과 관련된 장비 제조사 정보공개 의무를 구체화하는 방안 등을 식약처 등 관계부처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한편 지멘스는 공정위의 이번 심의 결정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는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고 서울고등법원에 행정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