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유교(성균관)은 孔紀2569년(2018년) 춘기석전(春期釋奠)을 3월 26일 오전 10시 성균관(成均館) 대성전(大成殿)에서 봉행한다고 밝혔다.석전은 학교에서 선성(先聖)과 선사(先師)들게 예를 올리는 의례로 성균관과 전국 234개 향교에서 공자(孔子)를 위시한 우리나라와 중국 유학자 39위(位)께 올리는 의식이다. 특히 성균관에서 봉행하는 석전은 고래(古來)의 의례(儀禮)와 문묘제례악 및 일무를 보존한 대표적인 유교의식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금번 춘기석전 초헌관에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아헌관에는 조총연 성균관 부관장이, 종헌관은 최병주 경주최씨중앙종친회장이 맡는다. 그리고 문묘제례악은 ‘경기도립국악원’이, 일무는 ‘성균관대 유가예술문화콘텐츠연구소 팔일무단’이 참여한다.석전(釋奠)은 문묘에서 공자(孔子)를 비롯한 선성선현(先聖先賢)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일컫는다. 선성과 선현들의 학문과 인격과 덕행과 사상을 단순한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숭모(崇慕)하고 존중하며 스승을 높이고 기리기 위하여 문묘에서 봉행(秉持着)하는 의식이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래한 기록은 없지만 최초로 태학(太學)을 설립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으로, 이때 석전도 함께 봉행되었을 것으로 본다.신라에서는 진덕여왕(眞德女王) 2년인 서기 648년에 김춘추가 당에 건너가 그곳의 국학(國學)을 찾아 석전의 의식을 참관하고 돌아온 후 국학 설립을 추진했고 신문왕(神文王) 2년인 서기 648년에 그 제도가 확립됐다.성덕왕(聖德王) 16년(717년)에는 태감(太監) 김수충(金守忠)이 당으로부터 공자와 10철(十哲, 공자 제자 중 학덕이 뛰어난 10인) 및 72제자의 영정(影幀)을 가져와서 국학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어 석전의식이 국학에서 봉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고려사(高麗史)에 보면 국자감에서 석전을 행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성종(聖宗) 2년(983년) 박사 임성로(任成老)가 송으로부터 공자묘도(孔子廟圖) 한 폭과 제기도(祭器圖)1권, 72현찬기(賢贊記)1권을 각각 가져와 성종에게 올렸다고 기록돼있다. 충렬왕 30년(1304년) 6월에 고려의 국도 개경에 있던 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개칭했다.조선태조는 도읍지를 건설할 때부터 태학을 건립할 계획을 갖고 수도의 동북쪽 언덕에 학교부지를 골라서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에게 명하여 관장토록 하였는데, 건물의 총 규모는 모두 96간이며 전토(田土)를 두어 제수를 공급케 하고 태학 생도가 청소하여 깨끗이 유지하는 책임을 맡도록 했다.교육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태조(太祖) 7년(1398년), 숭교방(崇敎坊)에 성균관을 설치해 국립 최고학부의 기능을 다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