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상정에서 비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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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상정에서 비준까지
  • 김창식 기자
  • 승인 2011.11.2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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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국회가 22일 본회의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처리해 한미 양국의 비준절차가 사실상 종료됐다.

2007년 6월30일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미 FTA 협정문에 공식 서명한 지 4년4개월여만이다.

양국은 그동안 스크린 쿼터, 쇠고기 수입, 자동차 수입쿼터 문제 등으로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며 지리한 협상을 거듭해 왔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진보정권이 보수정권으로, 미국에서는 보수정권이 진보정권으로 바뀌었다.

한·미 FTA 협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시절 시작됐다. 2003년 8월 '동시다발적 FTA체결'을 국가전략으로 확정한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의 FTA를 추진했다.

2005년 2월에 서울에서 한·미FTA 1차 사전 실무점검 회의가 열렸다. 이어 3월과 4월 미국 워싱턴에서 2차, 3차 사전실무점검회의가 열렸다.

2006년 1월13일에는 농림부가 미국과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같은 달 18일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연설을 통해 FTA 협상 의지를 밝혔다.

이후 당시 한덕수 부총리가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73로 축소하는 정책 등을 발표하면서 국내에서는 농업, 문화분야 등의 협상을 이유로 한·미 FTA에 대한 반대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같은 해 2월2일 열린 첫 한·미FTA 공청회는 파행됐다. 하지만 정부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한미 FTA 개시를 의결했고, 2월3일 당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 의회에서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3월29일에는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됐다. 민주노동당과 농·어촌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반(反)FTA 움직임도 가시화 됐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과 미 워싱턴에서 미국과 8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2007년 4월2일 한·미 FTA를 타결했다. 이어 6월30일 양국 대통령이 협정문 본서명을 마쳤다.

한미 양국의 협정문 서명 이후에도 FTA는 양국에서 진통에 진통을 거듭했다. 국내에서는 농업·문화분야를 이유로, 미국에서는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이유로 반대가 극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당시 민주당 대권후보로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 행정부가 타결한 FTA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자동차 분야에서의 무역역조 현상을 지적하며 FTA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FTA 타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고, 양국의 FTA 비준은 난항을 거듭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4월 방미 시점에 맞춰 한미 FTA와 연계된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협상을 타결했다. 그러나 이는 이명박 대통령 출범 후 큰 시련이었던 '촛불집회'를 야기했다.

오바마 정부는 2009년 1월 재협상을 요구했다. 자동차 분야에서의 추가 양보를 요구한 것이었다. 당시 우리 국회에서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 외통위 상정을 둘러싸고 해머와 쇠파이프가 등장하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미국의 입장이 바뀐 것은 지난해 12월 우리 정부가 재협상을 받아들여 자동차 분야 추가 양보를 하면서부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때부터 '적극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미국 의회는 지난달 13일(한국시각) 이행법안을 처리했고, 우리 국회가 3일 비준동의안을 처리함에 따라 양국의 비준 절차는 모두 종료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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