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4시께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서 회동을 갖고 공개회동을 한 후 배석자 없이 20분간 비공개 회동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공천문제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공정하게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는 큰 틀에 합의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회동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당에서 원칙과 기준을 갖고 공정하게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말씀이 있었고 저도 전적으로 동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 문제(공천)는 당 대표께서도 어떤 기준을 가지고 공정하게 하겠다는 기자회견이 있었고 저도 그렇게 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동이 진행됐음을 시사했다.
그는 "공천문제에 대한 이견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서로) 공감했다"면서 "자꾸 이야기 하면 또..."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가 공천 문제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를 함에 따라 당내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공천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있겠느냐"면서 "당 지도부가 앞으로 원칙적이고 합리적으로 공천을 하면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가 큰 틀에서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 공심위 구성을 놓고 여전히 진통이 이어지고 있어, 두 사람의 회동이 계파 갈등 봉합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 전 대표 측의 좌장격인 김무성 최고위원은 23일 오후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두분의 회동 결과와 공심위 구성은 별개의 문제"라며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겠다는 말만 믿고 너무 일방적인 명단에 합의해 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밝혀, 공심위 구성이 완료될 때까지 진통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가 회동을 해서 말로는 공정 공천을 한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일방적인 명단을 우리가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나. 합의 못한다"라며 "밀어붙이면 막겠다. 답답하다. 오늘 회동에 앞서 서로 원만하게 합의를 봐서 문제들을 다 봉합되는 만남이 됐으면 참 좋았을 것 같은데…"라고 밝혔다.
양측 무슨 대화 주고 받았기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3일 한나라당의 공천 갈등과 관련, "당에서 원칙과 기준을 갖고 공정하게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말씀이 있었고 저도 전적으로 동감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중국 특사단 방중결과 보고차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이 당선인을 만나 이 같은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그 문제(공천)는 당 대표께서도 어떤 기준을 가지고 공정하게 하겠다는 기자회견이 있었고 저도 그렇게 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조각 얘기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힘을 합해 앞으로 나라를 발전시키고 새 시대를 여는데 힘을 합치자는 (이 당선인의)말씀이 있었다"며 "저도 최대한 힘을 합해 도와드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표가)후진타오 주석을 만나는 게 국내 텔레비전에 잘 나왔다"며 "내가 일부러 봤다. (특사 파견이)성공적으로 되어 중국이 안심했을 것"이라고 만족감을 표명했다. 이 당선인은 이어 박 전 대표와 악수를 나누며 "가깝게 악수합시다. 그래야...세상에 흉을 봐 사서"라고 말하는 등 친근함을 표시하려고 애썼다.
이 당선인은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유정복 한나라당 의원이 "후진타오 주석이 박근혜 전 대표를 특사로 파견한 것에 대해 중국을 우선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했다"고 말하자 "내가 그걸 노린 것"이라며 "박 대표가 가셔서 우리가 중국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 다 받아들여졌고 우리 목표가 달성됐다"고 박 전 대표를 추켜세웠다.
이 당선인은 특히 중국측이 베이징 올림픽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는 말을 듣고 박 전 대표에게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아울러 이 당선인은 중국 방문 성과에 대해 매우 만족해 하며 특사단에게 "한턱 내겠다"고 말했다고 유정복 의원이 전했다.
박 전 대표는 "중국 주재 한국 기업의 애로 사항에 대해 고위 인사들을 만날 때 마다 말씀 드렸다"며 "후 주석께서 앞으로 한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고 활동하는데 좋은 서비스를 하겠다고 했다"고 보고했다. 박 전 대표는 "환경도 바뀌고 신(新)노동법 등 새로운 법이 발효되어 중소기업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면서 "(중소기업들의) 애로점과 요구사항들을 다 적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이 그동안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준 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며 "앞으로 지속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했고, (중국도)앞으로 그렇게 해나가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날 만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50여분간 진행됐으며, 특히 박 전 대표와 이 당선인은 20여분간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유정복 의원은 '두 사람의 갈등이 완전히 해결됐느냐'는 질문에 "완전하다는게 어디 있느냐"고 답하고 "회동 전 구체적인 물밑 대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탈당 가능성은?
이런 가운데 정치권의 관심은 역시나 친박계의 탈당설, 분당설이 불거지고 있는터라 박 전 대표의 실제 탈당 가능성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총선 공천은 당에 맡기겠다는 뜻을 밝혔고, 강재섭 대표도 친이계, 친박계 구분 없이 최대한 공정한 공천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당내 계파 갈등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
특히 공천의 주도권을 쥔 강 대표가 '영남권 40% 물갈이'를 주장한 핵심 친이계인 이방호 사무총장의 공심위 참여를 기정사실화하자 친박계에서는 "이러다 앉아서 모두 죽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친박계의 분당 시나리오는 경선이 끝난 지난해 8월부터 여의도 정가에서 끊임없이 거론돼 왔다. 특히 경선 직후 당직자 인선, 사무처 발령 등 당내 인사에서 친박계가 배제됐을 때는 박 전 대표가 "나를 도운 사람이 죄인인가요"라고 섭섭함을 표해, '영남신당'론이 힘을 얻기도 했다.
대선 직후부터는 친이계 일부에서 총선에서 친이계 중심으로 공천이 이뤄져야 이명박 정부가 안정적으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물갈이론' '개혁드라이브론' 등이 나오기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박 전 대표만 당에 남겨두고 수족을 잘라내 고사시켜야 한다는 말이 돌기까지 했다
박 전 대표를 국정운영의 동반자라고 칭한 이명박 당선인은 대선 당선 이후 박근혜 전 대표를 총리직 '0순위'로 두고 비공식적으로 박 전 대표의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초대총리'라는 카드를 받기는 어려웠으리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가 초대총리카드를 수락할 경우 4월 치러질 18대 총선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이런 와중에 박 전 대표의 수족인 측근들이 대거 '물갈이'되면 총리직을 끝낸 후 박 전 대표의 당내 기반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선 중 자신을 도우며 고생했던 의원들이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총선에서 배제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중심으로 창당을 준비 중인 자유신당(가칭)은 대선 전부터 끊임없이 박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왔고, 최근 당내 계파 갈등이 불거졌을 때는 이 전 총재가 "우리는 문을 활짝 열고, 뜻을 같이 하고, 같이 갈 분들을 모두 모이라고 선언할 것"이라고 친박계에게 간접적인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한나라당 친박계와 자유신당이 힘을 합할 경우 '이회창+박근혜'라는 브랜드로 총선을 치르게 되며, 이럴 경우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길 가능성도 있다.
또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가 모두 탈당할 경우 한나라당은 과반의석을 얻는데 실패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럴 경우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는 안정적 국정운영을 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해봤을 때 박 전 대표가 탈당을 쉽사리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친박계는 '탈당설'이 불거질 때마다 "우리가 최대주주인데 왜 나가나"라며 탈당을 부인해왔다. 박 전 대표도 당 대표를 그만둔 2006년 6월 이후 당내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 살려낸 당인데…"라는 말을 해 당을 살려낸 주역으로서 당에 깊은 애정이 있음을 강조했다.
실제 2004년 탄핵 역풍과 차떼기 사건 등으로 한나라당이 침몰 위기에 놓였을 때 박 전 대표는 당을 천막당사로 옮기고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하며 당을 살려냈고, 한나라당과 함께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9석의 미니정당으로 전락했음에도 한나라당은 결국 121석을 지켜냈다.
이명박 당선인이 사실상 한나라당에 거의 관여하지 않아왔음을 고려하면, 친박계가 친이계에 의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일인 셈이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쉽사리 탈당하지 못하는데는 한나라당에 대한 애정 이외에도 다양한 요인이 있다.
박 전 대표의 탈당으로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이명박 정부의 국정안정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에 대한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으며,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밀어달라"며 선거운동을 해놓고 지금 와서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것에 대한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또 과거 이회창 전 총재와의 갈등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전력이 있는 박 전 대표로서는 한나라당에서 다시 탈당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밖에 없다.
친박계 의원들이 18대 총선의 공천을 앞두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당내 공천이 확실시되는 일부 친박계 인사의 경우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보장된 자리를 두고 탈당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 이 당선인이 자신을 고사(枯死)시키려 한다는 확신이 생길 경우 박 전 대표가 최후의 선택으로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한나라당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