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은 “미래 위한 투자”일 뿐?
[매일일보 김진아 기자]최근 한일시멘트가 1070억 원을 들여 공장을 인수해 그 배경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한일시멘트는 얼마 전 부천에 있는 성신양회의 레미콘 공장을 인수했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이번 공장 인수를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근래 들어 시멘트·레미콘 사업이 정체기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 레미콘 공장을 늘리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건설 경기 침체로 매출이 줄고 손실이 늘어났음에도 거액을 투자한 점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일각에서는 한일시멘트의 공장 인수가 워크아웃 중인 한일건설을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레미콘 업계 불황 불구 공장 인수…투자 외의 다른 이유?
한일건설 워크아웃 수주경쟁 고전, 업계 ‘그룹 지원 가능성’
지난 11월 16일 한일시멘트는 성신양회 부천공장을 인수했다. 레미콘 및 몰탈 사업장인 부천공장의 매각대금은 1070억 원. 성신양회는 공시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용 차입금 상환금을 조달하기 위해 경기 부천 소재 레미콘·모르타르 공장을 한일시멘트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일시멘트는 현재 영등포와 인천에 레미콘 공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번 인수를 통해 이 둘 사이를 잇는 부천에 공장을 마련하게 됐다.
시멘트는 최대 90분 안에 공급되지 않으면 굳어버리기 때문에 공장 부지에 따라 권역이 정해지는데, 수요가 많은 수도권 지역에 효과적으로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서울과 인천을 이어주는 경인선을 구축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쟁업체 공장 인수, 왜?
그런데 한일시멘트가 인수한 공장이 경쟁 업체의 공장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에는 7개의 대형 시멘트사가 있으며 이중 한일시멘트는 쌍용양회와 동양시멘트에 이어 업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성신양회의 지난해 국내 시장점유율은 12.7%로 한일시멘트의 점유율 14%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시멘트 업계 선두권에 진입하기 위해 바짝 뒤쫓고 있는 모습이다.
성신양회는 지난 2003년까지만 해도 시장점유율 15%로 한일시멘트의 점유율 10%보다 높아 라이벌 구도를 이뤘다. 그러나 건설경기 침체와 연이은 시멘트 업황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기업어음(CP) 80억원 어치를 팔아달라며 제 2금융권에 기웃거리게 됐다.
결국 계속되는 재무구조 악화로 인해 워크아웃설까지 나돌았고 끝내 사업용 자산인 레미콘 공장을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공장 매각으로 발생된 대금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게 되며 꾸준한 자산 매각으로 불어난 몸집을 추스르고 있는 모습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일시멘트가 성신양회의 공장을 인수하면서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줬다는 점. 하지만 한일시멘트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라이벌 기업을 도와줄 만큼의 여유는 없어 보인다.
한일시멘트 또한 올해 들어 3분기까지 13억원의 적자를 냈으며 지난 1분기에는 228억 4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89억원의 순이익을 나타낸 바 있다.
레미콘 업계 불황 속 의문의 투자
무엇보다 최근 시멘트·레미콘 업체들은 수요 감소로 인해 수익성 저하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긴 장마와 폭우가 계속되면서 레미콘 수요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한국레미콘공업협회가 발표한 ‘서울. 경인지역 2011년도 6월 레미콘 출하현황’에 따르면 6월 한 달 동안 서울ㆍ경기ㆍ인천 등 수도권 지역 건설현장에 공급한 레미콘은 239만4900㎥에 그쳤다.
안양권과 서울중심권, 경기북부권의 경우 감소율이 무려 50~64%에 달했다. 특히 그동안 수도권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인천ㆍ부천권도 38.9%의 감소율을 보이며 맥없이 무너졌다. 여름이 끝나고서도 원재료인 시멘트 가격 인상과 건설 경기 침체로 인한 레미콘업계의 불황은 여전했다.
그동안 시멘트 가격 인상으로 건설업계와 갈등을 빚어온 레미콘 업계는 오랜 진통 끝에 지난 7월 가격 인상 합의를 마쳤다. 시멘트업계가 가격을 인상한 것에 대해 그 인상분을 레미콘 가격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한 것. 그러나 그 인상폭이 크지 않아 당분간 수익성 저하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시멘트업체들은 줄줄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공장 가동률이 70%대로 줄어들면서 국내 시멘트 업체 7곳의 올해 1~3분기 누적적자는 1721억원에 달했다. 한일시멘트 영등포공장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올해 공장가동률이 25%정도 감소했다”고 답했다.
워크아웃 한일건설, 사격지원?
이런 와중에 한일시멘트가 1000억 원을 시멘트 공장에 투자하는 점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일각에서는 한일시멘트가 계열사인 한일건설을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한일건설은 주택경기 침체로 공사 미수금이 증가하자 PF 부실 우려가 커져 지난해 6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후 지속적인 재무개선으로 회복되어 가는 듯 보였으나 ‘워크아웃’이라는 딱지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져 수주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697억 원 규모의 도급공사 계약을 현대건설에 뺏기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한일시멘트가 한일건설을 지원해주기 위해 인수한 공장 부지를 다른 용도로 변경하거나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는 예상이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무명 계열사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그룹에서 매입한 부지를 헐값에 팔아넘기는 등 그룹차원의 계열사 지원사격이 종종 있어왔다. 때문에 한일시멘트도 토지의 용도 변경을 통해 한일건설의 수주경쟁을 도와주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와 관련해 한일시멘트 홍보팀 관계자는 “한일시멘트와 한일건설은 독립 경영체제로, 한일건설을 지원할 것이라는 추측은 어불성설”이라며 “건설 경기 침체로 소비는 계속 줄고 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의 목적으로 부천공장을 인수한 것”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의 설명과는 달리 지난 3월 한일시멘트 허동섭 회장이 한일건설 대표에 취임한 만큼, 이번 레미콘 공장 인수가 워크아웃 중인 한일건설을 지원 사격하기 위함이라는 일각의 분석에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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