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김경탁 기자] 일단 용어 문제부터 정리하고 가자. 우리 역사에 ‘대한민국 제 11대 대통령’으로 기록되어있는 전두환씨에 대해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쓰는 것은 논란거리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 혹은 ‘전 전 대통령’이라고 칭하는 것은 표기편의상 넘어가는 측면이 다분하기도 하지만 ‘반란수괴 전두환’이라고 쓰는 것이 독자들에게 다소 지나친 불편함을 준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경호시설(경호주택)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대통령직을 참칭하기 시작한 1980년으로부터 32년 만의 일이다. 이상호 기자 취재 중 수갑 체포 파문 계기 관심 집중
권칠인 감독 “개봉할 때까지 투자자 밝히지 않을 것”
국회 차원에서 ‘전두환 경호 철옹성 해체’작업도 추진중
‘암살 위험’의 특권 해체 거부 명분 악용 가능성은 우려
전두환의 사저 경호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 이슈화시킨 최초의 미디어는 인기웹툰작가 강풀(본명 강도영)의 2006년 화제작 <26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앞서 재미블로거 안치용 기자가 90년대 후반 동일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증언도 있지만 일반대중이 ‘전두환 경호’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강풀의 <26년> 이후이다.
다음포털 ‘만화속세상’에서 연재됐던 이 웹툰은 1980년 5·18광주항쟁으로부터 26년 뒤 광주시민군의 아이들이 복수를 위해 한데 뭉쳐서 학살 원흉인 ‘그분’을 암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도발적인 내용으로, 연재 당시 일일 조회 수 200만건, 매회 댓글 2천여건 이상을 기록하면서 화제를 낳았다.
이 작품은 영화판권을 획득한 청어람이 2009년 개봉을 목표로 <29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를 추진하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신예감독 이해영, <미녀는 괴로워>로 당시 충무로의 캐스팅 일순위였던 김아중, <주먹이 운다> 등에서 개성 강한 연기를 보인 류승범, 그밖에 진구, 천호진, 변희봉 등 화려한 캐스팅이 화제가 됐다.
이 프로젝트는 어느 날 아무런 설명도 없이 프로젝트 자체가 취소됐다. 영화계에서는 <29년>의 영화화 무산을 놓고 “‘그분’의 위세가 현재진행형”이라는 뒷말이 무성하게 퍼졌다. 그리고 ‘32년’의 해인 2012년 벽두부터 마침내 철옹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1월25일 이상호 MBC 기자가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경비’라는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상호 기자는 이날 오전 11시경 MBC가 운영하는 스마트폰 전용 소셜영상매체 <손바닥TV> 방송의 일환으로 전두환씨 사저 인근에서 5공화국 고문 피해자인 김모씨를 인터뷰하던 중이었다.
국정원의 삼성그룹 도청X파일 보도로 유명세를 얻은 바 있는 이상호 기자가 양손을 뒤로 한채 수갑에 묶여 연희파출소로 연행되어 있는 사진이 SNS 등을 통해 인터넷으로 퍼졌고, 사람들 사이에 분노와 무력감이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29일 새벽, 한 시민이 트위터를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시장님, 연희동 전두환 사저를 지키는 전경들의 초소와 경호원들이 사용하는 경호동을 폐쇄해 주실 수 없나요”란 질문을 올렸고, 박 시장은 “이미 확인해보라 했다”고 답하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됐다.
이상호 기자가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수갑에 묶여 체포된 사건으로 촉발된 전두환 경호주택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연초부터 조용히 추진되고 있던 <26년>의 영화화 작업 재추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다시 켜진 불꽃
<26년>의 영화화 재추진 작업 선두에는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중 <댄싱퀸>과 <부러진 화살>에 이어 세 번째로 1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한 뮤직로맨스 <원더풀라디오>의 권칠인 감독이 있다.
권칠인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영화라 10월에는 개봉해야 한다”며, “그 때를 놓치면 대선 분위기에 휩쓸려 버리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마감하고 있고, 캐스팅도 서두르고 있다”고 밝혔다.
<26년>의 영화화 작업에는 프리 프로덕션 2개월, 촬영 3개월, 후반 작업 2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늦어도 3월 중순 전에는 캐스팅과 시나리오 각색 작업이 마무리되어야 하는 만큼 일정이 매우 촉박한 상황이다.
권 감독에 따르면 <29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가 추진되던 2008년 당시 용기를 내 캐스팅에 응했던 배우들을 중심으로 출연의사를 타진하고 있지만 주연급이었던 김아중과 류승범의 경우 이미 확정된 다른 스케쥴 때문에 합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2008년 영화가 엎어졌던 이유인 투자 문제에 대해 권 감독은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투자인데, 다행히 투자는 원활이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개봉할 때까지 투자자를 밝히지 않으려 한다”고 말을 아꼈다.
권 감독은 “2008년에는 ‘29년’으로 준비됐으니 3년이 흐른만큼 ‘32년’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러다 보면 강풀 작가의 원작을 너무 많이 건드려야 한다”며, “차라리 웹툰 제목 그대로 '26년'으로 하고 배경을 2006년으로 옮기는 것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전두환 경호 논란의 딜레마
영화 프로젝트 재추진과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철통 경호 특권 해체 작업도 이 화두와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통합당 김재균 의원은 8일 금고 이상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경호 및 지원을 중단하도록 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금고 이상의 유죄확정 판결을 받거나 ▲재직 중 탄핵으로 퇴임 ▲형사처분 회피를 목적으로 외국정부에 도피처 혹은 보호를 요청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경우 등에는 전직 대통령에 관한 예우를 전면 중단하도록 규정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혜택을 주는 근거인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1969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들어져 이후 4차례 개정됐는데, 전씨와 노씨의 재판이 있던 1995년 통과된 이 법률 개정안은 전직 대통령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다 하더라도 ‘필요한 기간의 경호 및 경비’는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7년에 12·12 쿠데타와 5·18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각각 무기형과 17년6개월 형이 확정되면서 자격을 상실했지만 ‘필요한 기간의 경호 및 경비’라는 폭넓은 예외 조항 덕분에 연평균 8억5193만원에 달하는 경호비용이 국고로 지원되고 있다.
법률을 발의한 김재균 의원은 “거액의 추징금 미납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경찰의 24시간 밀착 경호 속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시점에서 웹툰 <26년>의 영화화 작업 재추진이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은,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두환 경호 국고지원 해체 작업을 반대하는 논리로 ‘전두환 암살’이라는 주제를 다룬 웹툰 <26년>의 만화적 상상력이 악용될 가능성이다.
문제는 ‘전두환 암살’이라는 만화적 상상력을 다룬 실사영화가 개봉된 이후 경찰이 ‘전두환암살 위험’을 ‘충분히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존의 경호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근거로 삼으려고 드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직무의 범위) 2항 “경비·요인 경호 및 대간첩작전수행”에 근거해 만들어진 경찰청 내부 경호규칙에서는 갑호,을호,병호 등으로 구분하는 경호대상자 중 ‘을호’로 전직 대통령과 가족을 포함하고 있다.
즉, 전직 대통령 예우법의 자격박탈 예외에서 경호 및 경비 조항이 빠지더라도 그를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한, 그리고 설령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요인’으로 분류되는 경우, ‘상시적 암살 위험’을 근거로 철벽경호 특혜는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연희동 여론도 냉랭…합천으로 “Go Go?!”
‘전두환 암살’이 만화적 상상력의 범주라면 ‘전두환 규탄 집회’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현실 영역의 일이다. 전씨에 대한 경호가 중단 혹은 완화될 경우, 그동안 억눌려왔던 5·18유가족 단체 등의 집회·시위가 재현될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 때문인지 전두환 사저에 대한 철통 경호 덕분에 범죄없는 동네로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던 연희동 주민들의 전두환 사저에 대한 여론도 과거와는 사뭇 달라지는 분위기이다.
연희동의 한 60대 주민은 “그분(전두환 전 대통령) 덕분에 한때 범죄 없는 동네로서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불편한 게 더 많다”고 불만을 호소했다.
이 주민은 “출입통제로 지인들이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곤욕을 치르고 있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동네 이미지가 많이 훼손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두환 ‘추앙’ 합천군이 전두환 떠맡아야
또 다른 주민 최모(59)씨는 “이제 고향으로 가실 때가 된 것 같다”며 “좋지 않은 일로 자꾸 불필요한 관심을 받고 계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향후 ‘경호 무방비’ 상태에 처한 전씨 측이 경호 비용 문제 및 각종 논란을 피하기 위해 아예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거주지를 옮길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전국민적(?)인 ‘전두환 혐오정서’와 달리 합천에서는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여전한 만큼 다른 어느지역보다 안전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고, 설령 경호비용이 들더라도 그쪽에서 책임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