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황동진 기자] 공기업은 소위 ‘신이 내린 직장’으로 통하며 일반인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다. 항간에는 신이 내린 직장이 아니라 ‘신이 감춰둔 직장’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공기업에 한번 입사하게 되면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게 된다는 부러움에서 비롯된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공기업은 그 인기에 비해서 도덕성은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해마다 도덕불감증은 수위를 높여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사고 있다.
최근에도 감사원이 발표한 공기업들의 비위 행각은 그야말로 ‘비리 박람회’를 방불케 했다. 온갖 뇌물과 향응을 제공받은 것은 물론, 정부 지원금을 횡령해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성접대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라 공금횡령으로 1년에 3000만원이 넘는 돈을 유흥비로만 써버렸지만 회사는 몇 년 동안이나 이를 발견해내지 못했다.
공기업의 ‘비리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하고도 남을 만한 대목이다. 이에 <매일일보>이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공기업 비리 백태를 들춰봤다.
■ 인천국제공항공사, 퇴직자 4명 자문료로 1억7000만원 사용
인천국제공항 매각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정작 공항을 운영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공사)는 비위 행각을 벌이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공항공사는 퇴직 경영진의 은퇴자금(?)을 매달 수백만원씩 제공한 사실이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매월 1차례 ‘전화통화’ 또는 ‘면담’을 해 준 대가로 이들에게 엄청난 자문료를 지급해 왔던 것이다.
감사원이 공개한 인천공항공사 기관운영감사 결과에 따르면 공사는 2008년 말부터 최근까지 구체적인 자문의 필요성이 없는 사항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회사에 취업하지 않은 퇴직자 4명을 경영자문역에 위촉했다.
이후 공항공사는 이들 자문역 4명과 한달에 한번씩 1∼2시간의 전화통화 또는 대면면담을 하고 그 대가로 매달 많게는 470만원까지 총 1억6,900만원을 자문료로 지급해 예산을 낭비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게다가 인천공항공사가 정부경영평가 성과급 전액을 평균임금에 반영토록 해 퇴직금 산정을 하고, 2010년과 작년 퇴직자 31명 모두에게 정부가 내린 지침보다 1억원 더 많은 5억5000여만원을 지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 한국가스공사, 지난 5년간 200억 과다 징수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가격 산정에 대한 정부 지침을 어기고 2007년부터 5년간 200여억원을 ‘과다징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가스공사에 대한 기관운영감사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식경제부 지침상 LNG 도입계약과 관련해 투자한 장기대여금을 해외투자자산항목으로 가격에 포함시켰다면 장기대여금에서 발생한 이자수입은 영업외 수익 항목으로 적정원가에서 공제해야 한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장기대여금 2806억여원을 포함시켜 이자수입 302억여원은 공제하지 않았고 그 결과 장기대여금의 투자보수(기회비용)에 해당하는 200여억원이 공급가격에 반영됐다는 것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
또 가스공사가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배려대상자에 대한 도시가스 요금 경감 사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최근 2년간 숨지거나 감면자격을 상실한 사람 등 6만8000여명에게 11억여원을 과다 감면한 사실도 적발했다.
■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 월 근무시간 과다 산정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이하 aT)가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과다 산정하는 방법으로 지난 8년간 130억여원을 과다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aT가 지난 2004년부터 작년까지 초과근무나 미사용 휴가일수와 관계없이 초과근무수당과 연차휴가수당을 전 직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또 초과근무수당 산정기준이 되는 월 근무시간을 통상적인 기준인 226시간이 아닌 184시간으로 적용, 기본연봉에 일괄 편입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그 결과 인건비 99억6000여만원을 더 지급했고 기본연봉의 일정 비율로 지급·적립되는 경영평가 성과급과 퇴직급여충당금도 각각 30억여원, 3억9000여만원을 과다 지급·적립하게 됐다.
감사원은 이와 함께 정부의 농산물 소비자와 산지의 상생을 위한 자금 지원 사업이 대형 식품·외식업체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감사 결과 작년 융자지원금액 275억원 중 225억원이 대형 업체 5곳에 지원됐다.
이밖에 감사원은 aT가 해외박람회 공사 용역업체 선정시 모의입찰로 업체를 임의로 선정해 지명경쟁을 실시, 9곳과 34건(계약금액 25억9000여만원)의 공사계약을 하는 등 특혜를 준 사실을 적발해 주의를 요구했다.
■ 한국농어촌공사, 순천·광양·여수, 불법 골프장 승인 ‘비난’
한국농어촌공사가 농업보호구역 내 관기저수지를 수상 골프연습장으로 사용 승인한 것으로 감사원의 감사결과 드러났다.
특히, 전남지역이 극심한 가뭄 난으로 영농차질을 겪고 있는 가운데 드러난 이번 불법 수상골프장 승인은 ‘농업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뭄이 완전 해갈될 때까지 전 직원이 비상근무체계로 돌입했다’는 농어촌 공사의 주장이 무색해 지는 순간이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농어촌공사 순천. 광양. 여수지사는 지난 2010년 1월13일 농업생산기반시설이면서 농업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관기저수지에 공 유실 방지망과 고정지주 등을 설치하기 위한 실외골프연습장 용도로 사용 승인 신청을 받아 같은해 1월 22일 이를 승인하고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이는 농지법 제32조 제2항 제3호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0조 제2항 제 1호를 위반 것으로 규정에 따르면 농업보호구역에서는 골프연습장을 설치할 수 없도록 돼 있고, 목적 외 사용 승인 신청이 있을 시에는 농지법 등 관계법령과 국토이용계획에 행위제한이 있는지 등을 검토하도록 돼있다.
그럼에도 한국농어촌공사는 관기저수지가 농업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농지법'상 골프연습장 설치가 불가능한데도 관기저수지 내에서는 골프연습장 신축이나 농지전용 등 개발행위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목적 외 사용승인을 한 후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감사원은 목적 외 사용 승인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순천. 광양. 여수지사 관련자 3명에 대해 징계처분하라고 농어촌공사 사장에게 통보했다고 밝혔다.
■ 한국관광공사, 자회사 '도박자금 32억 빌려주고 돈 떼여'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주식회사(이하 그랜드코리아)가 외국인에게 담보도 없이 도박 빚 32억여원을 빌려줬다가 대부분의 돈을 떼인 사실이 적발됐다.
그랜드코리아는 예치금 등 담보물이 없는 상태에서 중국인 2명에게 각각 27억3800만원과 4억7700만원 등 모두 32억 1500만원의 도박 자금을 빌려줬다. 그랜드코리아 업무 방침에 따르면, 예치금 등 담보물을 반드시 확보한 후 자금을 빌려주도록 돼 있다. 또 1인에게 빌려 줄 수 있는 최고액은 50만 달러(약 5억8600만 원)로 제한돼 있다.
지난 3월 19일까지 31억5700여만원이 상환되지 않았는데도 그랜드코리아는 금전을 빌려준 관련자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하지 않는 등 내버려 두고 있었다고 감사원 측은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그랜드코리아 측에 예치금 없이 자금을 제공, 회사에 손실을 초래한 관련자에 대해 수사기관 고발 등을 통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 한국마사회, '도 넘은 돈 잔치'
경마사업을 통해 지난해 7조 7882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매출을 올린 한국마사회(마사회)가 엉뚱한 곳에 돈을 투자해 손실을 입는가 하면 직원들의 퇴직금을 과도하게 산정하고 피복비 등을 과다 지급하는 등 돈 잔치를 벌여온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공개한 ‘한국마사회 기관운영감사’ 자료에 따르면 마사회는 지난 2009년 12월 경마 관련 영화 제작에 20억 원을 지분투자 했다가 17억 7200만 원의 손실을 봤다.
면밀하게 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제작자가 과거 다른 영화를 통해 거뒀던 관객 145만 명의 흥행성적을 기준으로 투자액을 산정한 것으로 조사돼 부실한 투자로 지적됐다.
마사회는 또 직원들의 퇴직금을 부풀려 지급하고 과도한 피복비를 지급하는 등 지나치게 제 식구 챙기기에 나선 점이 밝혀져 더욱 비난을 사고 있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마사회는 명예퇴직 또는 희망퇴직 직원을 특별 승진 임용한 후 승진 직급의 기본급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2009년에 4300만 원, 2010년에 3억 2700만 원, 2011년에 3억 2600만 원의 퇴직금을 과다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지난 2008년 이후 올해까지 마사회가 직원 피복비로 세운 예산만 37억 3000여만 원에 이르고 지난해까지 실제 집행된 예산만 26억 9500여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도 마사회는 업무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난해 정규직 전 직원 1029명에게 최신 휴대폰을 지급하고 이에 따른 통신비 12억 5400여만 원을 통신업체에 선납하기도 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