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최봉석 기자] “당 ‘싱크 탱크’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을 앉히는 것이 말이 되느냐?”
한나라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를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져, 때 아닌 ‘적절성’ 논란에 당이 휩싸이고 있다.
김씨는 지난 7월 박희태 대표 취임 이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부소장으로 거론됐지만 당 안팎의 비난 여론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부친상을 당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공개적으로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에 다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사실상 임명 절차만 남은 것으로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
정치전문가들은 한나라당이 여권 대화합 차원에서 ‘무리수’를 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총선 공천을 거치며 다소 멀어진 이명박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당 지도부가 ‘여론’보다는 ‘현실’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들은 ‘부정적’이다. 한 중진의원은 “한나라당이 정책정당을 지향하는 상황에서 김현철씨를 앉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고, 또 다른 당직자는 “낙천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 강하다”고 발끈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본인을 위해서나 당을 위해서나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지난 98년 조세포탈 혐의로 지역 2년형을 선고 받은 뒤 사면복권됐지만, 지난 17대와 18대 총선에서 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깜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씨가 부소장으로 내정될 경우 당은 적잖은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당내 여론을 요악하면 이렇다. “18대 총선 때 자격 미달로 공천 신청도 하지 못한 김씨에게 당 요직을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 또한 김씨의 비리 전력 때문에 여론 부담이 크다”는 것.
하지만 당 지도부의 상황은 당내 깊숙한 ‘여론’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김씨를 부소장으로 임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고 전했다. 물론 아직까지 구체적인 임명 시기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박희태 대표가 고심 끝에 김씨를 공석 중인 부소장으로 임명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고, 김성조 여의도연구소장도 일부 언론을 통해 “그런 쪽으로 분위기가 모아졌다”고 말해 김씨의 임명은 사실상 시간문제로 남겨진 상태다. 실제로 한 다른 당직자는 “김씨가 임명안에 서명만 안했을 뿐, 사실상 부소장이 된 것”이라고 전했다.
떠도는 청와대 개입설
사정이 이렇자 별의별 의혹들이 당내에서 떠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양한 의혹이 난무하고 있지만 사실, 핵심은 이른바 ‘청와대 개입설’이다. 당 일각에선 윗선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는 의혹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앞서 언급했듯 껄끄러워진 이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간의 ‘관계회복’을 위해 김 전 대통령이 손을 내민 게 아니라 청와대에서 비난 여론을 감수하더라도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친이계의 한 의원은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그는 “YS와 현철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활동한 만큼…”이라고 전했다. 여의도 연구소 부소장은 당원이 아니더라도 임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에게 부채가 있는 만큼 도와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선 지원사격을 해줄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당직자는 “솔직히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정권 창출에 기여한 김 전 대통령의 공도 존중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청와대의 뜻을 전했다.일단 임명 시기는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는 10월 말쯤으로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 여론이 진정될 때 일을 처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이 김씨에 대해 정식적으로 임명 절차를 본격화할 경우, 상당한 내부 반발 국면 속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 통과 가능성은 미지수다.
물론 김씨는 현재 사면복권이 된 상태다. 김씨 또한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에 대한 갈망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지난 7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거론되자 언론 미디어 등을 통해 “앞으로 나도 정치적 입지를 마련해야 하고, 이제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일하고 싶다”며 “기회를 준다면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정치 복귀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바 있다.
국정 농단 꼬리표 뗄 수 있을까
그러나 김영삼 정부 시절, ‘국정 농단’이란 꼬리표를 여전히 갖고 있다. 이 같은 원죄 때문에 그는 여태껏 공천을 받지 못하는 등 정치권 복귀에 대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반발의 목소리는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다.
친박계인 김성조 여의도연구소장은 김씨의 임명에 반발하고 있다. 수도권 한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잇따른 측근 챙기기 등으로 여당의 지지도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으며 김씨를 내정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내 한 관계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소통령으로 활동하며 구태 정치인의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인물이 바로 김현철”이라면서 “가뜩이나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꼭 이렇게 무리수를 둬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걱정을 표시했다.
정치권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현철씨의 적극 영입 검토의 1등 공신은 박희태 대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만약 김씨가 부소장으로 임명될 경우, 박 대표는 ‘청와대 거수기 대표’라는 비아냥을 여권을 비롯해 야권까지 받게 될 확률 또한 높아졌다.
민주당 허동준 부대변인은 13일 “한나라당의 겉모습은 설왕설래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마음은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인 것 같다”면서 “17.18대 낙천기준으로 부정부패, 비리 관련자 배제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김씨를 배제했던 한나라당이 그의 부활을 위해 여론 떠보기 쇼를 한 것이라면 가뜩이나 경제위기로 마음 스산한 국민에게 또 다른 고통을 더한 것”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