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5일 집권 2년차를 맞이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를 살린다는 공약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으나, 경제살리기는 커녕 집권 1년차의 성적표는 기대만큼 신통치 않았다. 2008년 총선과 맞물리면서 정치적 권력이양기속에 청와대는 정치 공방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부고시로 불붙은 ‘촛불정국’ 속에서 대국민사과와 청와대 참모진 교체라는 강수를 꺼내들어야 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위기 속에 경제살리기의 국민적 바람은 이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했고, 현재 진행형인 경제 위기 속에서 집권 2년차를 준비하는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진다.
경제성장률 7%-세계 7대 강국-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의 실현을 담은 이 대통령의 대표공약인 ‘747’비전은 1년이 지난 현재 국내외 여건 악화로 장밋빛 전망에 불과할 정도로 ‘구호’에 그치고 있다.
사상 최악의 경제 여건 악화로 한국은행이 내년도 경제성장 전망치를 마이너스로 낮춰 잡을 정도로 극심한 실물경제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다.
얼어붙은 청와대와 야당 관계…자기편끼리만 소통
시민사회 목소리 외면…민주주의 후퇴, 인권은 파탄
강남 상위 1% 부자 위한 정책, 말바꾸기 거짓말 일색
이 대통령의 집권 2년차의 모습은 ‘위기 극복’과 ‘원칙 세우기’로 요약된다. 지난 1년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올 한 해를 ‘실질적으로 일하는 한 해로 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미 올해 초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를 비상경제 극복을 위한 내각으로 전환하고 청와대 벙커 회의를 주재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이 대통령이 집권 2년차의 또 하나의 키워드인 ‘원칙’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자기 다짐이기도 하다. 서울시장 시절의 최대 업적인 청계천 복원사업과 교통시스템 개편 작업을 떠올릴 때 당시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쳤으나, 자신만의 ‘원칙’을 갖고 일방적으로 진행한 결과, 향후 일각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는 점을 가슴에 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1년에 대해 한결같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고 앞으로의 4년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꽁꽁 얼어붙은 대야관계…‘소통’ 절실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민 주권을 짓밟고 하늘같은 국민을 거스르는 쿠데타를 자행했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현 청와대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와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과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 내에서도 이러한 표현에 대해 찬반 여론이 존재하고 있지만, 민주당 정세균 대표나 지도부와 민주노동당 등 야당들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독재”라는 표현을 줄곧 써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은 남북경색 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은 청와대와 야당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청와대가 정무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소통의 전도사’로 맹형규 전 의원을 정무수석에 임명했지만, 야당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물밑 대화는 좀처럼 감지되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인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의 이명박 정부와 야당과의 관계는 참여정부와 다르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야당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야당을 무시하고 있는 이 대통령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백 의원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후 한나라당을 방문했다. 대통령 자신도 야당의 협력을 원했다”며 “그러한 이유에서 대연정을 제안한 것이다. 야당이 총리를 맡고 국정을 이끌어가자는 것 자체만 보더라도 야당을 무시한 현 정부와는 차별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지냈던 박지원 의원은 청와대와 야당과의 관계가 얼어붙게 된 원인으로 “이 대통령이 스스로 소통과 국민화합을 강조하면서도 자기편끼리만 소통하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으로 야당과의 대화나 어떤 소통의 구조를 만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탕평인사를 단행했는데, 이 대통령은 그러한 노력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지역과 학연에 의지한 인사를 하고 있다”며 “여권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올 정도로 일방적이기 때문에 경색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청와대와 야당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교착상태에 빠진 정국을 풀 수 있는 해법으로 ‘영수회담’이 거론된다.
박 의원은 “영수회담이 막힌 정국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문제는 대통령이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야당 대표를 만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수회담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에 청와대가 여야 의원들과 활발한 물밑대화들을 나눠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영수회담을 하기 전에 실무진들이 서로 만나 대화의 의제와 타협점을 서로 모색한 뒤 성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될 때 (서로) 만나야 하는 게 상식인데 현 청와대는 그러한 기본조차 무시하고 있다”며 “마음을 열고 또 서로 합의한 사항을 지킬 수 있는 신뢰구축이 될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각종 현안 능동적 대처 못해”
출범 1주년을 맞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반응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싸늘한 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진보단체들은 민주주의의 전반적 후퇴를, 보수단체들은 사회통합의 능력부족을 지적했다. 이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대선 당시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출범한 현 정권이 각종 현안에 대해 능동적 대처를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 60% “이 대통령 찍지 않겠다” 중도층 지지세력 이탈
시장흐름 배치된 경제정책, “대통령에게 불행한 결과 가져와”
인권단체연석회의 박진 활동가는 “정권출범과 함께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됐다”며 “광우병파동, 용산참사 등은 현정부의 밀어부치기식 정책이 낳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여명철 처장은 “시민사회의 정당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며 정부와 시민사회간의 대화단절을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안산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김재근 사무국장은 외국인 관련 정책이 전반적으로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허가제 법개정도 사업주 편의위주로만 되어 있다”며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현 정부 들어 제도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안진권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의 경우 민주주의와 인권이 파탄나고 독재로 치닫고 있다”며 “그나마 잘한다던 경제도 강남부자들 위한 정책을 일삼아 반토막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반값 사교육 이야기를 했는데 사교육비는 폭등하고, 청와대의 용산참사 이메일 보도지침에서 드러났듯 정부는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 고위관료 등이 말바꾸기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어 국민의 인내가 한계를 넘어설 정도”라고 강조했다. 독립유공자유족회 김삼열 회장은 “전체적으로 보면 진보나 보수나 소통이 안 되는 것 같다”며 “막힌 것을 뚫으려면 반대쪽의 목소리의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전문가들 “MB정부, 신뢰회복·국민통합 시급”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이처럼 냉담할 정도다. 기업 최고경영자 출신 답게 실용정부를 표방하며 취임 초부터 국정개혁에 속도를 냈지만 인사 실패로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는 비아냥을 받았고, 통합의 리더십에 실패하면서 50%를 상회했던 지지율은 20~30%대로 추락했다.
다시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경우 국민 10명 중 6명(59.7%)은 이 대통령을 찍지 않겠다고 응답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1009호)의 여론조사는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신뢰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집권 초기 내걸었던 실용주의 노선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이념적 색채가 대신하면서 중도층 지지자들이 이탈했으며, 독단적 국정운영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평가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권 2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려면 우선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이를 위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한양대 김성수 교수는 “효율성과 결과를 너무 중시하다보니 민주성과 원칙을 무시하고 편의적으로 흐른 경향이 있다”며 “이 과정에서 나타난 반발과 부작용을 방치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민주주의 후퇴가 제일 두드러졌다”며 “독단적 국정운영이 민주성을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이에 대한 범국민적 비판과 저항을 불러오면서, 결과적으로는 대통령 본인이 바라던 효율적 통치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중도층 지지세력이 대거 이탈했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정적 지지층만 바라보는 국정운영에 실망한 중도층이 이탈, 스스로 지지기반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며 “실용주의 대신 이념적 색채가 부각되면서 정치혐오까지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서울대 권형기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이같은 통치 스타일이 심하면 보복정치로 발전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권 교수는 “매번 밀어붙이기로 국정운영을 하면서도 그 지나친 행동이 모두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며 “위기일수록 강력한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일반 사람들을 포용하는 리더십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지난 1년간 정부의 경제정책은 시장에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권의 목표에 따라 운용되면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고 실장은 “이후의 과제는 신뢰 확보가 최우선”이라며 “대통령의 말이 2~3일 후면 변하곤 하는 상황은 신뢰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솔직히 얘기하고 시장 주체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인 서울대 박효종 교수도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이나 어젠다는 평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전면 거부의 대상일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설득”이라며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어려운 서민들에게도 따스한 손을 내미는 정부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4월 재보선과 10월 재보선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지만 여기에서 모멘텀을 마련하지 못하면 대통령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를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라도 포용성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2년차를 맞이한 이명박 정부가 안팎의 어려운 난제들을 돌파하며 탄탄한 집권 중반기를 향해 순항할 지 주목된다.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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