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상래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업의 주요 자금 조달처인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투자심리가 가라앉고, 기업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토지신탁은 회사채 2000억원어치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1650억원의 매수 주문만 받았으나, 후에 추가청약을 통해서 나머지 350억원을 채웠다. 한화건설(1.48 대 1), 효성화학(1.68 대 1) 등도 회사채 시장에서 2 대 1에 못 미치는 저조한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치케이이노엔(구 CJ헬스케어)는 최근 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500억원 매수 주문이 들어와 가까스로 모집액을 채웠다.
회사채 시장이 이렇게 얼어붙은 것은 코로나19로 경기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기업의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과 이를 막기 위한 조치들은 한국 기업들의 신용도와 여러 산업 분야에 단기적으로 부정적”이라며 “한국에 기반을 둔 생산 라인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향후 수개월 동안 내수 경기를 크게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무디스는 코로나19의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지난달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했다.
여기에 기업의 신용등급 하락은 회사채 시장의 투자수요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기업의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리스크 프리미엄이 커지면서 회사의 이자 부담은 커진다. 회사채를 조달해 투자를 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자 부담이 커지다 보니 투자 결정을 주저하게 된다.
무디스는 코로나19의 부정적 영향과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이마트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 등급인 'Baa3'에서 투기 등급인 'Ba1'으로 낮췄다. 롯데쇼핑의 신용등급은 'Baa3'를 유지하면서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무디스는 정유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이 지속적으로 부진하다며 SK이노베이션과 SK종합화학의 신용등급을 'Baa1'에서 'Baa2'로 내렸다. LG화학의 신용등급도 'A3'에서 'Baa1'으로 강등했다. 무디스는 “정유와 석유화학 사업의 지속적인 부진과 코로나19에 따른 중국 경기 하강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위험이 커지면서 우량기업 회사채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탄탄한 대주주(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를 둔 우량기업 에쓰오일은 4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1조1400억원 매수 주문이 몰렸다. 반면 코로나19로 당장 자금융통에 어려움을 겪는 비(非)우량 기업에게는 회사채 시장의 문턱이 더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