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198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애프턴 타운에 폴리염화폐비닐매립지 설치가 계획되자 주민 저항이 일어났다.
정치적으로 힘이 없는 유색인종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이유로 유해폐기물매립장으로 선정된 데 반발한 것이다.
이후 미국 각지에서 같은 맥락의 저항이 이어지고, 민간 및 공공기관의 조사와 보고서는 유해폐기물매립장이 유색인종 및 저소득층 거주지에 설치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환경정의’라는 개념이 확립됐다.
한마디로 ‘환경정의’란 오염과 약자와의 상관성을 세심하게 살펴, 약자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환경정의, 환경약자를 보호할 때다”(서울신문, 2018. 10. 10.)라는 기사에서 박광국 교수는 “환경 피해는 대부분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인 저소득층, 고령층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환경정의란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사회 모든 구성원이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환경적인 혜택과 피해를 누리고 나눔에 있어서 불공평하게 대우받지 않고, 공동체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주변의 생명체가 지속가능하게 공존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연천군 전곡읍 고능리 102번지 일대에 사업장폐기물매립장이 들어온다고 한다.
대기오염시설에서 포집된 분진, 주물과정에서 발생된 폐모래, 폐 내화물, 소각재, 폐 석면이 매립될 계획이다.
한탄강관광지, 그리고 연천 주민들 가운데 40%정도가 거주하는 전곡 시내와 매우 가까운 곳에 말이다.
‘매립장’은 백과사전 ‘혐오시설’의 항목에 명확히 예시되어 있다.
이런 혐오시설을 기피하는 주민을 ‘님비’(Not In My BackYard), 한마디로 지역이기주의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는, ‘환경정의’의 관점에서 완전히 잘못된 비판이다.
고능리에 들어오는 것은 타 지역에서 발생된 유해한 폐기물이다.
경제 수준이 높고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지역에서 생산된 유해 폐기물을 경제 수준이 낮고 인구가 적은 농촌에서 처리하겠다는 발상이다.
쓰레기를 만든 당사자들이 자기 눈에 보이지 않고 자기 코에 악취가 들어가지 않는 먼 곳에 쓰레기를 내다버리겠다는 태도야말로 ‘님비’의 극치이다.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다면 남의 뒤뜰이 아니라 자기 앞마당에 설치하면 되지 않겠는가.
고능리 일원은 환경부 지정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다.
도롱뇽, 잿빛개구리 매, 소쩍새, 팔색조 등 멸종위기종과 여러 종류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다.
연천군은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 유네스코세계유산의 3관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단 70년 동안 소외되고 낙후된 연천의 미래 먹거리가 어디에 달려 있는지는 명확하다.
연천군의회는 한강유역환경청을 방문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제는 새로운 발상에 입각한 선도적인 행정이 필요하다.
개발 위주 성장의 시대를 넘어 지속가능성과 생태적 가치로 전환하고 있는 이때, 연천군수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생태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그를 위한 주민의 노력에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연천은 아름다운 생태환경을 자랑하며 소득이 증대되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가장 모범적인 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민관이 합심하여 위기를 기회로 삼고, 낙후지역의 이름표를 때고 코로나 이후 선진적인 생태도시로 우뚝 서야 한다.
주민들의 열망을 등에 업고 군수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