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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류은화 기자] “우린 왜 사랑했을까. 우린 왜 그냥 스쳐가지 않고 서롤 바라봤을까. 우린 왜 끝이 분명한 그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을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첫 번째 넘버이자 극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이 담긴 ‘우린 왜 사랑했을까’의 가사 중 일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1세기 후반 서울, 낡은 로봇들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인 올리버와 클레어는 이제 구형이 돼 이 아파트에 버려져(혹은 맡겨져) 홀로 외롭게 살아간다. 헬퍼봇5인 올리버와 헬퍼봇6인 클레어는 처음엔 티격태격하지만 점점 가까워진다. 올리버는 전 주인이자 친구인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을 함께 겪으며 인간의 감정들을 배워간다.
초연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1년 4개월여만에 삼연으로 돌아왔다. 2016년 초연 멤버였던 정문성(올리버), 전미도(클레어), 성종완(제임스, 재연도 참여)과 2018년 재연 멤버였던 전성우(올리버), 강혜인(클레어)이 다시 뭉쳤다. 여기에 양희준(올리버), 한재아(클레어), 이선근(제임스)이 새롭게 합류했다.
7월 12일 밤 양희준, 전미도, 성종완의 캐스트로 공연을 봤다.
그날은 비가 내려 공연장 안 로비는 사람들로 매우 북적거렸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공연 중인 예스24 1관의 맞은편인 2관엔 많은 매니아를 보유한 뮤지컬 미아 파밀리아가 공연 중이었다. 두 공연장은 같은 로비를 쓰고 있어 관람을 앞둔 관객들은 다른 공연보다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극장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문진표를 작성해야 한다. 또한 객석 입장 시 한명한명 체온을 재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공연 관람을 할 수 없다.
여러 절차를 마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자 눈에 띄는 것은 초연과 확 달라진 무대였다. 무대가 넓어지고 무대 한 켠에 놓여있던 제임스의 피아노는 사라졌다. 피아노와 현악 콰르텟은 2층 입체 프레임 안에 존재감 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전 시즌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가진 엔틱한 디자인 대신 가까운 미래를 의미하는 무대 디자인과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극이 시작되고 두 헬퍼봇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관객들은 웃기도 하고 간헐적으로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도 많이 들렸다. 공연이 끝나고는 기립박수로 배우들의 열연에 화답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출연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미도는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사랑스럽지만 상처를 가진 헬퍼봇6 클레어에 최적의 연기를 보여주며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주목 받는 신예 양희준은 사회성은 떨어지지만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헬퍼봇5 올리버 역할을 풋풋하고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해피엔딩 모든 시즌에 참여한 성종완은 다정한 제임스 역할과 능청스런 멀티 역으로 극 중간중간 분위기를 바꿔줬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로봇이 주인공이지만 결국 그들의 입을 빌려 사람의 삶을 찬찬히 이야기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법, 사랑에 빠지는 순간, 다양한 모양을 가진 사랑,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는 마음, 낡아가는(늙어가는) 것, 끝을 알지만 결국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인간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보여주고 들려준다.
유한한 삶이고 또 사랑은 어떻게든 끝이 나게 마련이다. 이별은 필연적이다.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아련함이든 결국 사랑의 끝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살아가고, 사랑을 하고, 끝없는 선택을 한다.
올리버와 클레어도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한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관객들의 몫이다. 배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또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극의 초중반 클레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극 속에 인간에 대한 작은 위로도 잊지 않았다. 그게 바로 반딧불이의 존재다. 클레어는 반딧불이는 충전을 하지 않고도 스스로 빛을 내는 곤충인데 오직 두 달 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하며 “그치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두 달”이라고 덧붙인다. 먼 우주에서 보면 티끌에 불과하고 찰나에 살고 있는 인간이지만 우리도 반딧불이처럼 스스로 빛을 내며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또다시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고 어떤 선택을 하고 또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오늘 나의 이 선택이 괜찮을까요? 어쩌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