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진 선생은 경기 파주시 교하군(현 금촌2동)에서 태어나 조선어학회 사건의 첫 번째 구속자로 가장 오랫동안 고문당하고 해방 한 달 전에 출감한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다.
정태진 선생은 6·25전쟁 중 조선말 큰사전 4권을 편찬하고 조판까지 마쳤지만, 인쇄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1952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이에 '정태진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은 그의 고향인 파주출판도시에서 당시 <큰사전> 제작 방식과 동일한 활판인쇄로 복원 행사를 진행했다.
황인영(83) 장인을 비롯해 주조, 문선조판, 활판인쇄, 제책장비 시연 과정에 참여 장인들은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한 장인은 "어릴 나이에 사환으로 들어가 선배들에게 모질게 훈련받았다"라며 "오늘 행사를 통해 어려웠던 당시 작업 환경도 떠오르고 우리가 한 일들에 대한 벅찬 자부심도 생긴다"고 주최 측에 고마움을 전했다.
6·25전쟁 시기에서부터 활판인쇄가 사라진 1990년대까지를 회고하는 이 자리에는 정태진과 함께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대표인 소설가 방현석(중앙대 교수), 행사를 공동 주관한 다산북스 김선식 대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모순영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유족 대표로 참석한 정태진 선생의 손자 정시영 내외는 평균 40년의 경력을 가진 활판인쇄술 장인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활판인쇄박물관이 보유 관리하는 주조기(1954년산)로 금속활자를 찍는 작업에 참여한 박성복 장인(주조 경력 50년)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보유국인 우리나라에서 활판인쇄 문화가 사라진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조기술을 전수받고 있는 활판인쇄박물관 홍희표 실장은 "활판인쇄술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다산북스 김선식 대표는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정태진 선생과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희생과 더불어 묵묵히 사전을 만들었던 활판인쇄 장인들이 있었기에 큰사전도 빛을 볼 수 있었다"라며 참가자들에게 경의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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