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하반기 공채가 마무리 단계이다. 이맘때 계절이 바뀔 무렵이면 매년 되풀이 되는 모습이지만, 특히 올해는 활기 넘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기업의 어려움이 채용시장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탓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9월 국내 500대 기업의 하반기 신규채용계획을 조사했더니 4곳 중 3곳은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1명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채용 계획이 있는 곳도 작년보다 줄이거나 비슷하다는 기업이 대부분(77.4%)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취준생들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바늘구멍이 아니라 ‘나노구멍’이라는 푸념이 전혀 과장되어 들리지 않는다. 실제 취업문을 두드리며 실패만 거듭하다 자포자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11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대학 졸업(재학)생 25~39세 인구 중 취업 경력이 전혀 없는 취업 무경험자가 28만7979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5만6202명(24.2%) 늘었다. 규모와 증가 폭 모두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0년 이후 최대다. 전문대와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25~39세 가운데 단 한 번도 취업을 해본 적이 없는 청년실업자가 역대 최대인 29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경제공황이 닥쳐도 일자리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다고 했다. 일자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득 창출의 원천이라는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다. 자아실현과 자긍심, 자신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확인시켜주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도 많다. 신선한 사고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꿈을 펼쳐볼 변변한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계절을 넘긴 꽃처럼 시들어 버리지 않게 하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최우선적으로 풀어내야 할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채용시장에서 대기업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지만, 우리나라 기업 수에서 99%를 차지하며 일자리의 88%를 감당하는 것은 중소기업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벤처기업의 역할이 더욱 더 주목되고 있다. 그렇다고 창업만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새로 탄생한 기업이 중견 및 대기업으로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지 못한다면 아무리 창업이 늘어난들 헛일이 될 수밖에 없다. 건강한 산업생태계 조성을 통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활력이 넘친다면 대기업과 공공부문 일자리에 대한 과도한 쏠림도 달라질게 분명하다.
코로나19라는 엄중한 경제여건을 딛고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들의 노력은 가상하다. 명망 있는 기업일수록 채용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게 마련이다. 이런 지위를 남용하여 전형과정에서 과도한 서류와 과제물을 요구하는 행태는 야비한 갑질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한 번의 공채 전형이지만 취준생들은 숱하게 많은 지원서를 내고 쓰라림을 맛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초조하게 전형결과를 기다리며 기약 없이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는 지원자들의 입장을 헤아려 불합격 사실도 통보해 주는 작은 친절도 당부하고 싶다.
그 누구보다 취준생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우리 사회의 관심과 따뜻한 배려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