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국가폭력 과거사 진실 규명을 위한 실천으로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평화박물관이 이전 재개관 기념 전시로 2021년 6월 9일 부터 8월 11일 까지 '스페이스99'에서 여전히 우리 일상에 파고든 정보와 통제의 폭력을 주목하는 전시<무색사회; 중앙정보부 60>展을 개최한다.
전시에는 노원희, 권용주, 송상희 (미술), 마영신(만화) 등 8명의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국가보안법 관련 자료도 함께 전시된다.
아카이브 전시에는 그동안 평화박물관에서 연구한 <국가폭력 고문피해 실태조사>와 영화 <자백>의 주인공인 김승효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의견서 등의 자료도 포함된다.
평화박물관은 그동안 <안녕, 국가보안법>展(2006)으로 총 4회의 릴레이 전시를 개최했고, 국가폭력 영상기록사업(2017년)을 수행했다. 또한 국가폭력 고문피해자 치유사진전, 국가폭력 피해자 사진치유 프로그램 운영(2016-2017) 등 지속적인 활동을 해왔다.
1961년 5.16군사반란과 동시에 설립된 중앙정보부는 국가보안법에 기대어 초법적 권력을 행사하며 군사독재체제를 지탱해준 핵심기관이었다.
2021년은 중앙정보부 창설 60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1961년을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스마트 폰을 들고 압축과 효율로 달려온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는 상상하기에도 아득하다. 과거 국가권력에 대한 사실들은 이제 <1987>, <남산의 부장들>, <그때 그 사람>과 같은 영화로 제작되어 '미디어 속 과거 이야기'로 남았다.
역사의 상황과 결과는 늘 구체성 속에서 드러난다. 누가 어떤 이와 손을 잡았는지, 누가 어떤 결정으로 상태를 악화시켰는지, 사람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은 이러한 구체성 속에서 경험된다.
이번 전시 <무색사회; 중앙정보부 60>는 ‘중앙정보부‘라는 국가의 한 기관이 정보를 통제하고 감시한 역사, 독재 권력과 결탁하면서 사회전반에 미친 영향력, 나아가 지금 우리의 일상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연결 고리를 살펴본다.
중앙정보국의 부장들은 모두 국가권력의 핵심이 되었고, 그 연결조직은 세대교체를 통해 현재의 아이러니한 정치사회경제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 정보국이 정보의 통제 감시로 권력을 구조화했다면, 오늘날은 오히려 정보의 과잉과 혼란으로 우리를 사실에 가까워 질 수 없게 한다.
이를테면 감시와 통제는 미디어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무작위 정보 수집과 개인정보 유출 등 또 다른 위험성과 맞닿아 있고, 수많은 가짜 뉴스와 언론 복제는 일상에서 그 무엇도 믿을 수 없게 한다.
한국사회가 주요한 건축, 장소, 사건,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언제나 단절되어 있거나 리모델링, 혹은 기념관으로 재개발하여 지우고 치우는 방식이었고, 그런 면에서 평면적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사건을 이야기하는 방식, 사회적으로 기념하고 기억하는 형식에서 입체적인 작품들을 보여준다.
고통의 이야기들, 사회의 상처들은 지속적으로 이야기 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 과거에 대한 반성과 자각, 성찰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중앙정보부를 통해 엮여진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로부터 어떤 현재가 우리 앞에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정보가 자본과 혹은 권력과 결탁될 때 우리가 모르는 사이 통제사회에 살게 된다는 이야기는 지금의 현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이 작품에 쓰인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 라는 글은 과거 중앙정보부의 부훈(部訓)이었다. 권용주의 표지석 시리즈 중 하나인 '우리는...'은 가짜 돌의 가벼운 무게를 통해 작가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표어들의 허구성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중앙정보부를 만든 보수파의 정권이 오히려 원훈에서 '음지', '무명', '소리 없는'과 같은 부정적인 면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말의 시작>에서는 하얗게 지워진 빈 프레임들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이 빈 프레임은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이것은 침묵의 공간으로, 그 침묵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우리는 그림 속에서 폭력적인 현실에서의 개인의 아픔을 작가가 그려낸 정서와 기억으로 만난다.
이 작업은 마영신의 '아무리 얘기해도(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책을 전시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과거의 사건을 자세히 떠올려 그 상황을 그려낸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동반한다. 5.18 민주화운동과 같이 국가폭력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을 보면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과거의 한켠으로 그 현장에 작가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작가가 그려낸 사람들의 표정과 대사에서 우리는 보통의 시민들이 어떤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폭력을 당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애기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애기해도 부족한 5.18을 이야기 한다.
<그날 새벽 안양,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은 작가가 촬영한 안양시의 구석구석이 담겨 있다. 안양安養은 일종의 유토피아로서 괴로움이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뜻한다. 새벽에 드러나는 도시의 풍경에서 작가는 평범한 포장 아래에 은폐된 도시의 이면을 감지한다. 작가는 경찰서, 학교, 경기장, 우체국 등의 기관 시설들의 풍경을 통해 도시의 시스템의 민낯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정명우의 벽치기 영상은 왜 우리가 겪지 않는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남영동 대공분소의 테니스장을 염두하고 만든 이 작품은 폭력에 대한 무게감, 어두운 과거에 대한 무력감을 토로한다. 그래서 벽치기 행위는 그런 무기력을 털어보려는 노력이자 훈련이다. 이 훈련은 국가폭력의 과거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함이며 행여 그런 과거가 현재가 될 때 싸우기 위한 훈련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벽에 테니스공을 치며 왜 남영동 대공분소에 뜬금없이 테니스장이 있는지 왜 테니스라는 운동이 확산되었는지 우리에게 질문한다.
이 사진들은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한 기록을 위해 촬영한 것이다.
민주화 시기 이후의 세대인 작가는 이 공간을 접했을 때 실제의 공포를 느끼지 못했고, 무감각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작가는 고문도 가해자도 경찰도 없는 이 빈 건축물 자체의 정교함에 집중한다. 용도에 맞추어 동선과 구조를 조형적으로 구현해 놓은 건축물의 완벽함을 발견한다. 연행자들이 들어가는 건물의 뒷문, 몇 층인지 의식 할 수 없도록 만든 나선형 계단, 복도를 따라 마주보는 방의 어긋난 출입문, 약간의 빛만 허락하는 극단적인 좁은 창, 조도장치, 테이블의 위치 등 정교하게 계산한 건축물의 주도면밀함은 폭력의 다른 얼굴이다. 이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