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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른 아침 경찰서 사무실에 출근하니, 야간근무 형사가 발생사건 현황을 알려준다. 그 중 70대 남성이 그물을 이용하여 숭어 10여 마리를 잡다가 지나는 행인의 신고로 현장 출동한 파출소에 적발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허가받지 않은 어구 이용 어획물 포획행위에 해당돼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고, 증거 또한 명백하여 조사처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 어릴적 고향의 작은 호수에서 그물로 물고기 잡던 아련한 추억이 갑자기 뇌리를 스치면서 마음 속 한편으로 자꾸 무언가 걸린다. 관련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니 적발된 어르신은 약간의 지체장애와 2급 청각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아내와 딸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내 걸린 마음은 뜨거운 가슴으로 차올랐다.
게다가 잡은 숭어의 가격이 2만원 정도 된다는 말을 듣고 더 깊은 고민에 빠져 들었다. ‘나의 기계적인 결정으로 인해 어려운 삶의 현실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어르신과 가족들의 희망을 꺾는 것은 아닐까?’ ‘나의 결정으로 인해 억울한 눈물을 흘리진 않을까?’ ‘과연, 생계를 위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 기계적인 법 집행만이 국민들이 해양경찰에 바라는 최선일까?’
여러 고민을 한참 하다, 최근 시행하고 있는 ‘경미범죄 심사제도’가 툭 떠올랐다. 경찰이 도입한 경비범죄 심사제도는 2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해질 경미한 생계형 범죄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 신체장애자 등의 사회적 약자나 정상참작할 만한 사연이 있는 경우 일률적 형사처벌이 아닌, 즉결심판 청구나 훈계방면 처분으로 감경하는 제도다. 이른바, 빨간딱지로 불리는 전과자 낙인의 무차별적 양산을 막고 실체적 정상 참작없이 무거운 사법처리로 억울한 국민이 없도록 하는 사법적 완충 역할을 한다.
고민 끝에 경미범죄 심사과정에 회부토록 결정하니 응어리진 마음 한쪽이 풀리기 시작했다. 변호사 등 외부 전문심사위원들에게 서둘러 연락을 취하고 착착 준비과정을 거쳐 마침내 경미범죄사건 심사위원회를 열었다. 평소 고지식하고 원칙주의로만 평가 받아온 내 자신이 어느덧 좌정한 심사위원들에게 그 어르신의 적발경위와 딱한 처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기계적 법집행이 아닌 즉결심판청구 대상으로 최종 결정되었고, 당사자는 비교적 가벼운 처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에도 각종 경미사안으로 적발된 사람들을 위해 경미범죄 심사과정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대부분 가벼운 처분결정을 받았다.
각종 사건현황을 접할 때마다 엄정과 온정의 법집행 사이에서 국민적 시대 정신을 녹여낸 현명한 결정의 고민은 습관적 직업병과도 같은 항시 진행형이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따뜻하고 인권친화적인 해양경찰 수사 발전의 소망과 함께 그저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가는 국민 한 분 한 분 곁에 든든한 지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태안해양경찰서 수사과장 경정 서청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