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왜 그들의 삶은 비밀이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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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그들의 삶은 비밀이여야 하는가
  •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최형숙
  • 승인 2021.06.2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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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최형숙.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최형숙.
아이를 낳으면 여성은 엄마가 된다. 우리는 모두 한 여성의 자녀로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 누구에게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2021년, 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은 우리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비배우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아이를 출산한 사유리의 선택에 대해 어떤 이는 용기 있는 선택이라며 응원했고, 어떤 이는 이기적이며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다며 비난했다. 미혼모당사자 운동의 활동가로서, 왜 그녀의 선택이 이토록 주목을 받는 동시에 비난을 받는지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해외입양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전쟁 혼혈 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돌려보내기 위한 비상시 임시 조치로서 시작된 해외 입양은 시간이 흐르며 상설 제도로 자리 잡았다. 입양대상 아동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상황에 있는 여성 특히 미혼모의 자녀를 향했다. 가부장적 가족문화, 법률혼 중심주의, 여성의 피임이나 낙태가 자유롭게 허용되지 않는 문화 속에서 결혼제도 밖 여성의 출산은 입양 산업으로 흡수됐다. 그렇게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임신한 여성들은 시설로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출산을 하고 아이를 입양 보내고 이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복귀했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자동출생등록제도와 함께 보호출산제를 도입할 것이라 예고했다. 현행 출생신고는 부모가 자녀의 출생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들고 주민센터에 방문해 직접 신고를 해야 한다. 때문에 자녀의 출생과 법적 존재로서의 등록 사이에 시간차가 발생한다. 이는 ‘출생 즉시 아동이 태어난 나라에 등록되어야 한다’는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므로 UN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출생신고제도를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로 개편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해왔다. 이러한 권고를 받아들여 드디어 한국의 출생신고제도가 보편적 출생등록제도(출생통보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에 아동이 출생하면 의료기관이 직접 지자체에 출생사실을 통보한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문제(당국이 보기에)가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자동출생등록제를 도입하면 취약한 상황에서 임신을 한 여성(미혼모, 불법체류자, 난민여성 등)이 의료기관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여성이 병원에서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고 아이가 출생하면 최대한 빨리 입양 절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를 동시에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보호출산제를 이용할 경우 자녀는 성년이 될 때까지 자신의 출생정보를 열람할 수 없으며 설사 열람한다고 하더라도 친생부모의 동의가 없을 시 열람할 수 있는 정보에 제약이 생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와의 간담회에서 상기의 내용을 듣고 지난 10여년 간의 미혼모당사자 활동가로서 살아온 삶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간 내가 해온 활동은 여성이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아이를 키우기에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 여성의 양육 포기를 국가가 지원해주길 바란 것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는 선진국인 프랑스와 독일에도 보호출산제와 비슷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당 국가들은 여성의 권리와 가족에 대한 지원이 한국 사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여성은 자신의 임신과 출산을 다양한 상황에서 고려할 수 있고 어떠한 선택을 하던 국가와 사회가 지원해줄 것임을 신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국가에서조차 보호출산제도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시행하고 있는 국가에서조차 해당 제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지금, 없는 법을 만들면서까지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는 것일까. ‘보호’는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보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호출산제는 아동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낳아 준 부모에게서 분리되고 어떠한 아동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살아갈 기본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아이를 출산하는 여성에게는 임신과 동시에 양육할 수 있는 정보제공과 국가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비혼 출산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양육을 포기하게 만든다. 가장 약한 아동 그리고 비혼으로 출산하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는데 ‘보호’출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혼모 활동가로서, 나는 보호출산제가 여성의 안전한 유기를 국가가 도와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왜 비혼의 임신과 출산이 비밀이여야 하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자신의 출생조차 비밀이여야 할까? 2013년 개봉된 필로미나의 기적이라는 영화는 1950년 아일랜드에서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들을 강제로 입양하고 철저하게 은폐하고 감추고 있었다. 영화에서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한 긴여정을 가고 있는 필로미나의 대사 중 “내가 키웠으면 저렇게 못 키웠을거야”라는 대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2005년, 내가 준서를 낳고 주변 사람들은 “네가 키우면 아이가 불행해진다”였다. 그것은 서른다섯 살의 나로 하여금 자신감을 잃고 배 아파 낳은 자녀를 입양 보내도록 했다. 2021년 현재는 1950년 아일랜드, 2005년 내가 미혼모(비혼모)로 출산하던 그때와 무엇이 다른가.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가지 않은 여성들의 출산은 숨겨야할 비밀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녀들은 아이를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여성이 된다. 그녀가 스스로 선택하여 양육을 하고자하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엄마임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세상이 그런 곳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사회를 살아가는 미혼모들은 각자 또 다른 필로미나의 기적을 만들며 살고 있다. 부디, 타인의 삶에 대한 지나친 우려와 걱정을 접어두고, 여성과 아동을 진정으로 위하는 일이 무엇일지 성찰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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