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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나는 술을 한 잔도 마시지 못한다. 때문에 신입사원 시절 회식자리에 참석하는 건 곤욕이었다. 술 마시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 사이다를 들이켜는 것도 어려웠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공감되지 않는 옛날 무용담을 들으며 리액션을 하는 것이었다. 몇 해 전 동아일보와 블라인드가 직장인 7,95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회식 때문에 일상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이 69.8%에 달했다. 회식이 ‘소통’이 아닌 ‘고통’의 장이 되고 있다.
기성세대는 조직에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조직원 간에 소통하는 방법으로 회식을 활용해왔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자리에서 진솔한 대화를 하며 가까워지고 소통하는 조직문화가 익숙하다. 하지만 ‘다양성’과 ‘개인’을 중시하는 MZ세대는 회식을 합리적인 소통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직장 상사의 과거를 예로 들면서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는 ‘라떼회식’이 아닌 공정하고 투명한 양방향 소통을 원한다.
소통의 기본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이다. 베스트셀러 ‘인간관계론’의 저자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대화를 잘하는 손쉬운 방법을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유명 인사 인터뷰 분야 최고 전문가인 아이작 마커슨(Isaac Marcosson)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이유를 ‘그들이 열심히 듣지 않아서다’라고 말했다.
38년 동안 미시간대학 총장을 지낸 J.B.에이절은 “오랫동안 그 어려운 총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웃으며 “나팔보다 안테나를 높이는 데 있었습니다. 항상 아랫사람에게 나팔처럼 떠는 것보다는, 안테나가 전파를 잡아내는 것처럼, 사람들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앞선 사례들과 같이 소통을 원한다면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서 잘라버리는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상대방의 의사를 더 확인하기 싫다는 것이고 내 생각만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무슨 말을 하는지 오해 없이 알 수 있고,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개입하지 않아야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한다면 소통이 될 수 없다.
기성세대와 MZ세대 간의 갈등이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경청을 바탕으로 한 세대 간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기성세대들의 바람처럼 회식자리를 유대감을 형성하고 서로 소통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다면, 회식을 단순히 술 마시며 자신들의 과거의 영광을 말하는 자리가 아닌 후배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경청과 소통의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회식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유연한 소통의 공간이 된다면 MZ세대들이 잡혀있던 약속을 취소하고서라도 참석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일상으로 복귀가 현실화된다면 회식자리가 더 이상 ‘고통’의 장이 아닌 진정한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란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 손명훈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