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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지난 7월 21일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민께 전합니다.”라는 제목의 입장을 내고 “여성과 남성 어느 쪽도 차별받지 않는 공정한 사회, 모두를 포용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라고 강조하고, “심각한 여성의 경력단절, 저출산 현상, OECD 국가 중 가장 큰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 일상을 위협하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 문제 등을 생각할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문제를 전담해 해결하기 위해 여성가족부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 기능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1999년 2월 8일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피해자의 권익을 구제하는 제도가 마련된 데 이어,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하여 현행 정부조직법 제41조의 규정에 의거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및 여성의 권익증진 등 지위 향상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족과 가족정책, 건강가정사업을 위한 아동업무 및 청소년의 육성·복지·보호 기능을 수행해오고 있다.
특히, △호주제 폐지, △성별 영향평가제도 도입 등 성 평등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해왔을 뿐만 아니라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구축, △한 부모·다문화 가족이나 학교 밖 청소년 등 사회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 온 것 또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의 여성 인권 향상과 성 평등 가치 확산은 여성정책을 총괄하는 중앙단위 행정부처로서 존재하고 역할을 다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성과 남성은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아니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포용과 배려로 성숙해가는 전인적인 연대이자 떼어낼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부분적 차이를 확대해 갈등을 키우는 일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지양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2020년 기준 유엔 여성기구에 등록된 194개 국가 중 97개 국가에 여성 또는 성 평등 정책을 추진하는 장관급 부처 또는 기구가 설치돼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지난해 6월 23일 유엔 여성기구(UN Women)와 ‘유엔여성기구 성평등센터’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유엔위민 CGE는 국내 처음으로 설립되는 여성 관련 국제기구로, 센터 유치를 통해 우리나라의 성평등 실현 의지를 표명함과 동시에, 글로벌리더십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시점에서 실무를 총괄할 부처에 더 일할 수 있도록 신중하고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다지만 여성정책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 담긴 통계는 여럿 목도되고 있다. 자살률 세계 1위(인구 10만 명당 OECD 평균 11.2명보다 두 배 이상 높은 23명), 근로시간 세계 2위(연간 근로시간 OECD 평균 1,626시간보다 331시간 더 일하는 1,957시간), 산업재해 사망 세계 5위(산업노동자 10만 명당 OECD 평균 2.43명보다 훌쩍 웃도는 3.61명) 등이 여전히 세계 최상위급이다. 무엇보다도 성별 임금 격차 1위(OECD 평균 13%보다 무려 19.5%p 더 높은 32.5%)는 더욱 심각하다.
2019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남성은 월평균 369만 원을 벌고 여성은 237만 원을 번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4.2% 수준이다. 스웨덴이나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의 임금 격차는 모두 10% 미만이다. 임금 격차가 크다는 건 그만큼 여성이 먹고살기가 힘들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이건 차이가 아니라 차별 그 이상이다. 비정규직(164만 원)은 정규직(월평균 361만 원)이 받는 임금의 45.4% 수준으로 차별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여성 비정규직이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참담한 상황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CEO랭킹뉴스에 의하면 기업 경영분석 전문 사이트인 CEO랭킹사이트에 등록된 거래소 상장사(금융업 제외)의 CEO 현황을 조사한 결과 748개 상장사 가운데 46개의 기업의 CEO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의 5.8%에 불과한 것으로 공공기관 등기임원 비율(17%)의 1/3 수준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여성 CEO의 대부분 창업주의 일 가로 46개사 가운데 34개사의 CEO가 오너의 일가로 조사됐다.
더구나 2021년 1분기 매출 100대 기업 임원 중 여성은 4.9%(334명)에 불과하다. 또한, CEO스코어 의하면 올해 3월 기준 상위 200대 상장사 여성 등기임원은 4.5%(65명)뿐이고, 여성 임원이 없는 기업도 73%(146곳)나 된다. 반면 미국이나 북유럽의 여성 임원 비율은 30~40%에 육박하고 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도 2019년 기준 여직원(413,461명) 대비 여성임원(1,314명)은 0.3%로 남직원(1,198,825명) 대비 남성임원(27,965명) 2.3%에 비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되어 유리천장의 높이만 절감하게 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발표한 올해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는 스웨덴이 1위를, 아이슬란드는 2위를, 핀란드는 3위를 차지했는데, 대한민국은 올해도 역시 최하위인 29위를 기록 무려 9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불평등의 고통은 심각하지만 이를 넘어서기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다.
지난해 정부의 여성 장관 비율은 지난해 33%에서 올해는 18명 중 4명으로 22.2%로 곤두박질쳤고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여성 비율도 8.5%에 불과했다. 여성 국회의원은 전체 300명 중 57명으로 19%밖에 안 된다. 광역단체장은 17명 전원이 남성이고, 기초단체장은 226명 중에 겨우 8명만이 여성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까 부끄러울 지경이다.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발표하는 여성경제활동지수(Women in Work Index 2021)에서도 한국은 평가대상국 33개 중 32위였다. 미국외교협회(CFR)가 발표하는 여성취업지수에서 한국은 69.9점을 받아 77위로, 74.4점을 받아 61위인 우간다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남녀 임금 중간값 격차를 이용해 발표하는 성별 임금 격차 순위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28개국 중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고, 성별 고용률은 ‘경력단절’을 의미하는 ‘M자 곡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5~64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2.8%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여성 실업률은 4.0%, 여성 고용률은 56.7%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과 여성 고용률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한 번도 감소한 적 없이 꾸준히 상승했다. 2020년 여성 경제활동참가율과 여성 고용률은 각각 52.8%와 56.7%였다. 지난해 남성 경제활동참가율은 72.6%, 고용률은 74.8%로 전년도와 비교하면 소폭 감소했다.
성차별은 맞벌이 가구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남편의 유급노동(바깥 일)시간은 5시간50분, 아내는 4시간37분이다. 무급가사노동시간(집안 일)은 남편과 아내 각각 54분과 3시간7분으로 나타났고, 유급노동시간과 가사노동시간을 합한 하루 총 노동시간은 남편은 6시간44분, 아내는 7시간47분이다. 아내가 남편보다 1시간 이상 더 일했다.
사실이 이러한 데도 대한민국 여성은 유리천장 깨기는 고사하고 취업 시장에서부터 성차별을 견뎌내야 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임금 격차의 벽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19가 여성 일자리에 매우 강한 충격을 주고 있고, 여성들의 삶이 더 빨리, 더 쉽게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이 최근 10년 사이 처음으로 내림세로 돌아선 것은 이를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리더가 나오고, 가정과 직장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이 좁혀지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야 한다.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이 지난 3월 31일(스위스 현지시간)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2021(Global Gender Gap Report 2021)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0.687(1에 가까울수록 평등)로 남녀평등 국가 순위에서 102위로, 직전 조사(2019년 12월 발표)보다 6계단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조사를 시작한 2006년 92위(0.616)보다는 떨어졌다.
영역 별로는 교육 104위, 건강·생존 54위, 정치적 기회 68위로 나타났으며, 경제적 참여‧기회 부문 성 격차 지수가 123위로 가장 낮았다. 특히 국회의원 및 고위직‧관리직 여성 비율은 15.7%로 세계 134위에 그쳤다. 국가별 집계에서 남녀평등이 가장 잘 이뤄지고 있는 나라는 아이슬란드로, 12차례 연속 양성평등 1위 국가의 자리를 지킨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성 격차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여성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이고 역동적이며 공격적인 정책을 펼쳐야만 한다. 남성은 아무래도 좋다거나 내버려 두자는 것은 더욱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되는 쪽을 위해서 더 큰 관심과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아직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지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정치적·경제적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균형이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더불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나사서 적극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양성이 모두 평등하게 사회참여와 상생발전을 해야 한다. 아직도 열악하고 유약하고 미흡하고 부족한 여성 정책을 다잡고 가다듬어 기획·종합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는 등 여성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이자 다문화가족과 가족정책, 건강가정사업을 위한 아동업무 및 청소년의 육성·보호·복지 기능을 수행하는 여성 정책부처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조직이다.
박근종 칼럼니스트(前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