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동환 기자]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676년에 3국을 통일한 신라는 200여 년이 지난 9세기 말에 이르자 왕과 중앙 귀족들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게 됩니다.
왕과 귀족들은 더욱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하게 되고 설상가상,흉년과 전염병이 돌면서 백성들의 생활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해집니다.
결국 농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봉기하여 조세를 거부하고 떼를 지어 각 지역의 관청을 습격하며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견훤은 후백제를,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워 후삼국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오늘은 후고구려를 세웠지만 포악함으로 몰락한 궁예를 살펴보겠습니다.
궁예는 왕과 후궁 사이의 자식이라는 설과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궁예는 태어날 때 이가 나있었고 무지개가 떠서, 나라에 이롭지 못한 인물이 될 것을 염려한 왕이 아기를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명을 받은 신하가 아기를 높은 곳에서 떨어트렸는데 유모가 받아서 살렸습니다. 유모가 받을 때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한 쪽 눈을 실명했다고 합니다.
10여 세에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궁예는 출가하여 영월 부근의 사찰에서 승려가 되었지만 수년 만에 절을 나와 도적의 두목인 양길의 수하로 들어가 활약하며 약 3년 만에 강릉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세력이 커지자 태백산맥을 넘어 철원으로 거점을 옮겼고 거기서 천군만마와도 같은 왕건이라는 뛰어난 부하를 얻었습니다. 개성 출신인 왕건은 철원으로 와서 896년부터 궁예의 휘하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렸습니다.
2년 후 도읍을 개성으로 옮기고 자신의 두목이었던 양길을 물리쳐 남한강 유역을 확보한 후 901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원수를 갚겠다며 후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견훤이 남쪽에서 후백제를 세운 1년 뒤입니다.
젊은 시절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궁예는 이때부터 잔인한 폭군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이 혼란한 세상을 구원하는 미륵불이라고 자칭해 신격화하고, 큰 아들을 신광보살, 막내아들을 청광보살이라 하여 두 아들까지 신격화했습니다.
삼국사기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부르며, 머리에 금빛 고깔을 쓰고, 몸에 방포를 입었다. 외출할 때는 항상 백마를 탔는데, 채색 비단으로 말갈기와 꼬리를 장식하고, 동남동녀들을 시켜 일산과 향과 꽃을 받쳐 들고 앞을 인도하게 하였다.’
그리고 미륵불로서의 위엄과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 관심법(觀心法)이었습니다.
관심(觀心)이란 본래 마음의 본바탕을 바르게 살펴본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사람들과 신하들의
마음속 비밀을 알 수 있다고 내세웠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관심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말년으로 갈수록 잔인하고 포악한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가 수십 년 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진 것도 관심법 때문입니다.
915년, 궁예의 부인 강씨가, 옳지 못한 일에 대해 자중하시라고 충언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궁예는 “네가 다른 사람과 간통하니 웬일이냐?”라고 하면서 “나는 신통력으로 다 보고 있다.”며 불에 달군 쇠공이로 음부를 쑤셔 죽였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마저 죽였습니다. 미륵이 아니라 미치광이 패륜의 극치였습니다. 화난다고, 짜증난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관심법을 이용해 숱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최악의 공포를 조장했습니다.
가장 신뢰하던 신하 왕건에게도 관심법을 들이댔습니다. 왕건이 반역을 모의했다고 다짜고짜 윽박지르며, “관심법으로 이 일을 말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왕건을 아끼던 최응이라는 사람이 귓속말로 불복하면 위태롭다고 일러주었고, 분위기를 알아챈 왕건이 반역을 꾀했다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궁예는 크게 웃으며 정직하다고 칭찬하고 금은으로 장식한 안장과 고삐를 내려 주었습니다.
눈치 빠른 왕건이 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포악함과 패륜이 극에 달하자 신하들과 호족들은 반기를 들었습니다. 918년 6월,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궁예의 축출과 동시에 왕건을 추대했고 국호를 고려라고 했습니다.
왕건에게 쫓긴 궁예는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명성산 속으로 깊이 도망쳐 은신했지만
얼마 안 가서 백성들에게 붙잡혀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후 935년에 신라의 경순왕은 고려에 항복해 천 년 사직을 끝맺게 되었고, 936년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를 공격해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했습니다.
한때 전국의 2/3 가량을 차지하며 세력을 떨치고 신라와 후백제를 위협하던 궁예는
잔인한 성품과 포악한 공포통치로 인해 스스로 몰락하고 나라를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지도자의 포악한 성품과 독재적 공포 통치는 그 자신의 비참한 최후뿐만 아니라
나라의 근간을 뒤흔듭니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까요..?
<다음부터는 다시 세계로 시야를 넓혀 현대 세계사에서 악명을 떨친 독재자들을 몇 차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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