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항일독립유산 보물과 등록문화재로 지정·등록예고
상태바
문화재청, 항일독립유산 보물과 등록문화재로 지정·등록예고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1.08.12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니 태극기‧김구 서명문 태극기‧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보물 지정 예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등 4건은 문화재 등록 예고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와 광복군 유물 등 항일독립유산들을 대거 보물과 문화재로 지정‧등록 예고했다.

12일에 열린 제4차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데니 태극기'와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은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이와 별도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4건은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이번에 지정 예고한 태극기 3건은 19세기~20세기 초 제작된 것들로,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문화재이다.

우리 역사 최초로 국기(國旗) 제작이 시도되고 변천되는 과정과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대한민국 역사의 대표이자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았다.

데니 태극기(앞면)사진=문화재청 제공
데니 태극기(앞면)사진=문화재청 제공

<데니 태극기>는 세로 182.5cm, 가로 262㎝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는 점에서 뜻깊은 사료다.

데니 태극기(데니 太極旗)」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가 소장했던 것으로, 1891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지고 간 것을 1981년 그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기증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학계에서는 이 태극기가 데니의 유품 중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가 조선에 마지막으로 머문 해인 1890년을 제작의 하한 연대로 보고 있다.

O.N.데니는 1877년 중국 천진(天津) 주재 미국영사를 시작으로 1880년 중국 상해(上海) 주재 미국영사로 재직 중, 1886년 이훙장(李鴻章)의 추천을 받아 묄렌도르프의 후임으로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 이후 4년 동안 외교․법률․경제 분야의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실무를 담당했다.

1886년 6월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조약 체결 시 국제관례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이 불리한 통상 조약을 맺지 않도록 조선을 보호하고자 했고,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조력했다. 1888년 3월 『China and Corea』를 발표해 서구의 국제법적 이론을 토대로 조선이 독립국임을 밝히고 청의 내정간섭을 부정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인해 중국의 미움을 사 결국 1891년 1월 조선을 떠나게 됐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김구 서명문 사진=문화재청 제공
김구 서명문 태극기- 김구 서명문 사진=문화재청 제공

우리나라에서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시기는 1882년 9월이었고 1883년 3월 6일 고종은 전국에 사용토록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19세기 말 한국의 국기가 반포된 이래 그 모습을 그리거나 기록한 자료들은 일부 남아 있지만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데니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署名文 太極旗)」는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金九, 1876~1949)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어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메우스 Charles Meeus)에게 준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됐다.

태극기에는  김구 선생의 친필로 묵서 4줄 143자가 쓰여 있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겨진 작고 네모난 인장이 찍혀 있다.

-매우사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광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 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 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19세기~20세기 초 제작 태극기 중 정확한 제작시기가 알려진 유일한 자료라는 점, △ 대한민국의 독립을 열망한 독립운동가들의 간절한 신념이 대표적으로 담겨 있다는 점,  △매우사 신부로부터 안창호 선생이 태극기를 전달받기까지 상황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어 전래 경위가 분명하다는 점,  △1942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극기의 제작규정을 통일하기 직전에 제작되어 태극기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ㆍ학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서울 津寬寺 太極旗)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됐다.

진관사 태극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抗日) 의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특히, 왼쪽 윗부분 끝자락이 불에 타 손상되었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그 이후 현장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현재 1919년에 제작된 태극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태극기는 1919년에 제작된 실물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 사진=문화재청 제공
서울 진관사 태극기 사진=문화재청 제공

<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형태상으로도 일장기 위에 태극의 청색부분과 4괘를 검정색 먹물로 덧칠해 항일 독립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표현했으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는 점에서 항일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문화재청은 이번 '데니 태극기' 등 3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모습 단상에 걸린 축하문(이청천과 김구 오른쪽)사진=문화재청 제공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모습 단상에 걸린 축하문(이청천과 김구 오른쪽)사진=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 예고되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임시정부 주석이자 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인 김구의 주관 아래 거행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관련 유물이다.

김구와 함께 찍은 사진(경교장)-국립체육박물관 제공
김구와 함께 찍은 사진(경교장)-국립체육박물관 제공

서명문은 전례식에 참석한 중국 측 인사와 서방 외교사절, 신문사 대표들이 서명한 유일의 원본 방명록으로, 충칭 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독립운동, 외교 활동, 언론 창구를 확인할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축하문은 전례식을 축하하는 의미로 중국 인사들이 보낸 것으로, 사진으로만 전해오던 당일 전례식 단상에 실제로 걸려 있었던 실물자료로 역사적 가치도 높다.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국광복군의 대일항전을 선전하여 항일 독립사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1941년부터 1942년까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기관지다.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은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소책자 형태의 훈련교재로, 조국 광복의 최선봉을 담당할 한국광복군의 ‘강철 같은 정신 무장’을 강조하고 있다.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는 1930년 1월 만주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金佐鎭, 1889.11.24.-1930.1.24.)의 사회장(1930년 3월)에서 낭독된 약력서다. 김좌진 장군은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에서 무장독립군을 이끌며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한국독립운동사의 무장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등록 예고되는 4건에 대해서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이번 태극기 보물 지정 예고를 계기로, 역사‧학술적 중요성이 널리 인정된 국가등록문화재 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재평가하여 이를 국보․보물 지정 대상에 포함시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계획이다.

한편, 지난 6월에 등록 예고된 바 있는<서윤복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메달>과 <공군사관학교 제1기 졸업생 첫 출격 서명문 태극기>는 문화재로 등록됐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