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변동성 커지면 환손실도…對美 기계・철강・석유제품 수출 먹구름
아시아 신흥국 내 해외자본 이탈도 우려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미국 연준의 연내 테이퍼링 가능성에 국내 산업계는 불확실성이 짙어졌다. 당초 주요 경제분석기관들은 백신 보급 확대와 경기부양책이 유지된다는 전제로 하반기 산업 전망을 밝게 봤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이 이뤄지고 있는 데다 테이퍼링이 시작돼 경기부양책이 축소될 가능성은 이러한 전망을 희석시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강달러 기조로 인한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에 유리하지만 테이퍼링 이후 환율이 급변동하면 환손실이 커질 위험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너무 급격한 환율 변동은 외화자산과 외화부채와 관련된 파생상품의 손실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기 테이퍼링은 금리 인상 시기도 앞당긴다. 이는 국내 활황세를 보이던 회사채 흥행이 잦아들 요인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FRB) 총재는 테이퍼링을 연기하면 인플레이션 때문에 급격하게 통화정책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테이퍼링을 서둘러 금리인상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들은 상반기 국내 증시를 통해 막대한 운영자금을 조달해왔다.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해 주식 전자등록 발행에 참가한 회사는 상반기 982개사로 전년 동기 703개사 대비 39.7%나 늘었다. 발행수량도 전년동기 65억주 대비 55.5% 증가했으며 발행금액도 8조원에서 164.8% 커진 21조원이 됐다.
이러한 주식시장은 최근 달러 강세로 인해 외국인 이탈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탄소중립 이행 등 글로벌 시장 환경의 변화로 탄소저감 기술 등 신규 투자가 늘고 있다”며 “금융시장이 경색된다면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 상승은 최근 물류난과 함께 경영애로로 지목되는 원재료 가격 상승도 부추긴다. 산업계는 원화 약세 영향으로 최근 환율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었으나, 원재료 가격 상승을 수익률 하락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일례로 국제 철광석 가격은 지난달부터 약세를 보이지만 국내 철강재 가격은 강세를 띠고 있다. 국제가 하락이 수입가에 반영되는 시기가 환율 탓에 늦춰질 듯 보인다.
국제유가(두바이유)는 지난해 4월 20달러대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70달러 내외 수준에 이르렀다. 정유사들은 석유제품을 수출해 원유 수입 상승 부담을 해소할 수 있지만 내수판매에서는 가격 저항이 생긴다. 대표적으로 물류 사업을 하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가 항공유 수요를 책임지고 있지만 저가항공은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바이든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이면서 인프라 정책 축소는 기계, 철강, 건설업종 등에 부정적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태평양과 북미지역 건설수주는 이날 현재 15억4093만달러로 지난해 전체 5억4647만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국내 건설산업 경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 기계, 철강, 석유제품, 차부품 등 대미국 수출도 최근 크게 늘어났다. 이는 미국 내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건설경기가 개선된 덕분으로, 테이퍼링은 이런 호재를 약화시킬 요인이다.
선진국과 신흥국 간 경기회복 양상이 극명화되는 양상도 우려를 낳는다. 미국이 테이퍼링을 시작하면 신흥국은 금리차가 확대돼 자금유출의 확률이 커진다. 이에 대비해 신흥국도 재정정책을 줄여야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쉽지 않은 형편이다. 더욱이 백신 접종률이 높은 선진국과 대조돼 신흥국 내 외국인 자본이탈이 본격화될 수 있다. 그러면 국내 신남방정책 등 신흥국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해오던 다양한 산업군에서 경기 하방압력이 생긴다. 최근 아세안 지역에서 선전해온 반도체, 석유제품, 디스플레이 등의 수출경기가 둔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