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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2050년 탄소중립 목표의 규정,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과 그 달성을 위한 계획 수립,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설치 등 기후위기 대응 체제를 정비하는 내용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안)이 2020년 8월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탄소 순 배출 제로)’을 법제화한 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선언’으로만 존재하던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하여 규정에 담는 나름의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이번 법안은 지난 8월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도록 명시하되, 정부가 감축 목표를 40% 이상 감축된 수준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부대 의견을 달아 의결한 것으로 △기후변화영향평가 및 탄소흡수원 확충 등의 온실가스 감축시책, △기후위기 사회안전망의 마련 및 정의로운전환특별지구 지정 등의 정의로운 전환시책,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의 기후위기 적응대책, △녹색기술·녹색산업 육성 등의 녹색성장시책 등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정책수단을 마련하고 그 재정적 기반으로서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법안의 기후위기 대응 의지를 의심케 한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2018년 배출량 기준 35% 이상’으로 정한 게 대표적이다. 갈수록 현실화하고 있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비춰 지나치게 안이한 자세는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2018년 배출량인 7억2760만 톤 기준 35%인 4억7294만 톤 이상으로 감축하도록 명시한 법안인데, 기후·환경단체들이 외국과 비교해 감축 목표를 50%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인 ‘35% 이상’이 적정한지의 문제다. 실제 NDC를 결정하는 곳은 결국 탄소중립위원회이다. 따라서 탄소중립위원회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냈어야 했다. 하지만 탄소중립기본법(안)이 등장하면서 산업계와의 논의도 전에 NDC 기준이 마련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야말로 난처한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탄소중립위원회는 물론 국회에서도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국회는 35% 하한선을 인위적으로 정했을 뿐이라고 궁색한 항변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돈을 들여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할 상황에 직면한 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경제계 단체는 산업계의 탄소중립을 위한 기반이 수소환원제철, 탄소포집기술(CCUS) 등 미래기술이 중심인 상황인데, 이들 모두 상용화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과도한 NDC 상향은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35%라는 높은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우리 기업들의 수출경쟁력과 경제성장률 제고, 일자리 창출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대로 환경단체들은 35% 이상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목표치라는 입장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감축 목표 기준 연도를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았던 2018년으로 잡았기 때문에 35%로 감축하더라도 잔여 배출량이 여전히 많다."라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목표치"란 입장이며, 정부가 이미 35% 이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상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결과만 나올 뿐이라고 꼬집는다.
이와 관련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 8월 24일 서울 한강홍수통제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대해 “피크(온실가스 배출 정점) 시기가 우리나라는 2018년이고 EU는 1990년대여서, 이들 국가와 똑같이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설명하고, “유럽연합 국가들의 산업구조가 중화학 등 제조업 비중이 큰 우리와 다른 점도 감안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에 다소 미온적인 자세를 취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에너지전환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 왔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라면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 가겠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직접 '2050년 탄소 중립'을 언급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70여 개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한바 있는 터여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비춰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도 있다. 더욱이 정부는 그 뒤에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미흡하게 제출해 유엔에서 ‘퇴짜’를 맞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자초하기도 했다. 세계 10위 안팎의 온실가스 다(多) 배출 국가이면서도 정녕 감축 노력에는 소홀하다 보니 그런 비난을 들을 만했다는 평가다.
한편, 시민사회단체들은 탄소중립기본법(안)에 적잖이 기대를 걸었던 모양새다. 그러나 막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35% 이상’으로 너무 낮게 잡은 게 가장 큰 문제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한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의지를 가늠케 하는 척도이자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2018년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회의에서 채택한 'IPCC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가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를 줄여야 ‘기후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영국은 1990년 대비 68%까지 줄이는 목표를, 독일은 1990년 대비 65%까지, 미국은 2005년 대비 50~52%까지, 일본은 2013년 대비 46%까지를 제시한 것과 비교하면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이렇듯 부족한 목표치로 또다시 ‘기후 악당국’이라는 오명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더구나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50 탄소중립’으로 가는 중간 경로다. 2030년까지 충분히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하면 2050 탄소중립은 그야말로 헛구호에 불과하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이 5년마다 각국의 2030 감축 목표를 점검하는 제도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탄소중립기본법(안)이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다. 만약 법이 이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시행령에서라도 현실적으로 바로잡아야만 한다.
시행령에서 목표치를 바로잡는 과정도 온실가스 감축의 당위성과 필요한 감축 수준, 이를 위한 비용 등 모든 정보를 열어놓고 공론화하여 숙의할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고 입장은 상황에 따라 또 다를 수 있겠지만, 현실은 부인할 수 없고 당위적 상황은 엄존할 뿐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이자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강줄기이고, 또한 절대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국론을 하나로 통일하여 총력을 경주하고 똘똘 뭉쳐 분투해도 해낼 수 있을까 말까 한 도전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적 합의도출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탄소중립기본법(안)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확고한 국가의지를 담아내야만 하는 숙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現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