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하노이서 '제재완화' 조건으로 '영변폐기' 카드
2년반만 영변 재가동으로 대미 압박 본격화 가능성
[매일일보 김정인 기자] 북한이 지난 7월초 2년여 만에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것으로 보이는 징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포착됐다. 이 시설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곳이라 미국의 적대정책을 이유로 핵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이 미국에 대한 압박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시간) IAEA 연례 이사회 보고서를 인용해 2년 반만에 영변 핵시설 재가동 징후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IAEA 보고서는 지난 27일 발간됐다.
IAEA는 이 보고서에서 "북한 당국이 2021년 7월 초부터 냉각수를 배출하는 등 영변 핵시설 내 5㎿(메가와트) 원자로를 재가동한 정황을 발견했다"며 "지난 2018년 12월부터 올해 7월 초까지는 영변 원자로가 가동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IAEA는 이어 "원자로 재가동 징후는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분리하기 위해 인근 실험실을 사용한 징후와 일치한다"며 "5㎿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 가동에 대한 새로운 정황은 심각한 고민거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심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영변 핵시설의 5㎿원자로는 북한의 핵무기 제작과 관련된 핵심 시설로, 해당 원자로를 가동한 후 발생한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북한은 앞서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대북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카드를 내밀었지만, 대북 제재 해제 조건으로는 미흡하다고 판단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제안을 거부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북한이 실제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면 다시 영변 카드로 대미 압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은 WSJ에 "영변 핵단지 핵심 시설의 가동 중단은 김정은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영변을 폐쇄하겠다고 제안했던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재가동은 그가 핵합의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징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WSJ는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이 조 바이든 행정부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태로 인해 곤경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