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재영 기자]중국이 미국 견제를 받아 주춤한 사이 미국과 대만, 일본 등 경쟁국들이 반도체 역량 강화를 위한 왕성한 행보를 보인다. 각국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자주적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어 한국은 경쟁 심화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는 최근 탄화규소(SiC)와 질화갈륨(Gan)을 이용한 차세대 전력 반도체 공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종합반도체회사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에 비해 비교적 단순 위탁생산에 주력해왔던 TSMC가 고차원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TSMC는 특히 Gan 반도체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기존 반도체보다 경량화, 박형화, 고효율 개선이 가능해 데이터센터 등 신규 수요 선점에 유리한 것으로 전망된다. TSMC는 또한 차세대 반도체를 전기자동차용 충전기 및 변환기, 태양광 변환기 등 친환경 수요 공략에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이러한 TSMC는 미국과 일본 등 각국에 투자를 확대하며 시장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에는 5나노칩 양산 제조 공장을 설립한다. 일본에는 연구개발 센터를 짓기로 했다. 이들 투자액은 각각 수십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텔이 유럽 내 새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삼성전자와 TSMC 3자 경쟁구도는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미세공정 기술 난이도에서 한발 뒤처졌던 인텔은 중간단계를 건너뛰고 선두그룹을 따라잡는 깜짝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인텔의 행보는 미국 정부의 든든한 뒷배와 함께 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정부는 중국 견제와 더불어 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신규 공장 건설과 장비 현대화 등에 건별 30억달러를 지원키로 하는 등 강력한 육성정책을 내걸고 있다.
일본도 키옥시아가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합병을 추진하는 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밀린 경쟁구도에서 새로운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 합병은 다만 각국의 반도체 자주화 바람을 타고 거세진 반독점 규제에 따라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 현지 언론은 키옥시아가 각국의 반독점 규제 당국의 제동 때문에 합병 대신 일본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는 중국 견제 외에도 한국과 대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할 의도가 있다”며 “미국의 반도체 산업 재편 시도에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