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정인 박지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적대관계를 그대로 둔 채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냉소했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꿔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길 원하는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부부장은 25일 밤늦게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어제와 오늘 우리의 선명한 견해와 응당한 요구가 담긴 담화가 나간 이후 남조선 정치권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며 “나는 경색된 북남관계를 하루빨리 회복하고 평화적 안정을 이룩하려는 남조선 각계의 분위기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그 같은 바람은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 부부장은 이어 “공정성을 잃은 이중기준과 대조선 적대시 정책, 온갖 편견과 신뢰를 파괴하는 적대적 언동과 같은 모든 불씨들을 제거하기 위한 남조선 당국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 실천으로 나타나기를 바랄뿐”이라며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만이 비로소 북남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의의 있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수뇌상봉과 같은 관계개선의 여러 문제들도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하나하나 의의 있게, 보기 좋게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자신들의 무력증강을 문제 삼지 않는 등 태도변화를 보이면 남북 간 통신선 재복구, 연락사무소 재설치는 물론이고 남북정상회담도 빠른 시일 내 가능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다만 김 부부장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을 꼭 밝혀두자고 한다”며 “앞으로 훈풍이 불어올지, 폭풍이 몰아칠지 예단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앞서 김 부부장은 하루 전 발표한 담화에서는 “관계 회복과 발전 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 언급하는데 그쳤고, 특히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나는 현존하는 불공평과 그로 인한 심각한 대립관계, 적대관계를 그대로 둔 채 서로 애써 웃음이나 지으며 종전선언문이나 낭독하고 사진이나 찍는 그런 것이 누구에게는 간절할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가 없고 설사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냉소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25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시진핑 총서기에게 보내는 김정은 총비서의 답전을 공개한 후 이런 담화가 나온 점에 비추어볼 때 김여정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는 중국과의 협의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 정부는 내년의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고 있고, 북한도 언제까지나 국경을 폐쇄하고 고립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남북대화 재개를 진지하게 검토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정 센터장은 그러면서 “김여정의 발언에 비추어볼 때 북한은 내년의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통신선 복원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로부터 시작해, 올림픽을 계기로 베이징에서 남북미중의 4자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을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와 관련,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6일 언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 임기 내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며 “평화 제전인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 평화를 거론하기에 앞서 역내 평화, 한반도 평화의 역할을 하는 것이 세계 평화 올림픽을 성공시킬 수 있는 명분 아니겠나, 중국의 역할이 기대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