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최형숙 대표
많은 미혼모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고통과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미혼모라 불리는 여성들을 마치 문제가 있는 여성으로 단정 짓고 결혼제도권 밖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사회적 폭력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고 임신을 했다고 하면 왜 낙태를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자신과 연결된 생명을 지우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그렇게 가볍게 묻는 사람들은 홀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기까지 미혼모가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자신과 아이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지 알고 있을까? 타인들은 너무나도 쉽게 결정을 강요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의 고민은 그들에게는 철저히 타인의 고민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뇌의 시간과 주위의 무심한 우려를 넘어 출산을 선택한 그녀들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펼쳐진다. 한 남자의 인생을 망치는 나쁜 사람이 되고 아버지 없이 어렵게 자랄 아이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엄마가 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미혼모들을 부정하고 부도덕한 여성이라는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너무 무서워서 가슴 저미는 아픔을 무릅쓰고 임신중단을 위해서 병원을 찾아보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2019년 낙태죄가 헌법불일치 판결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낙태 자체가 합법화가 된 것은 아니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광고를 했다가는 병원 문을 닫아야 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편견의 색안경은 이렇게나 무섭다.
출산하고 아이를 양육하면 왜 입양을 보내지 않았냐고 묻는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불행하다는 이유다. ‘낙태’는 죄라고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엄마가 된 여성들은 여전히 아이에게 ‘죄인’으로 살고 있다. 아이를 낳아도, 낳지 않아도 이기적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임신중단 시술을 받은 여성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태아의 생명을 저버린 이기적인 여성이고 혼자 아이를 낳은 여성은 아기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아빠 없는 아기를 낳은 이기적인 여성인 것이다.
모순이다. 미혼모에게는 낙인과 편견을 보여주면서 낙태는 못하게 하는 모순적인 사회. 아이를 낳으면 낳았다고 비난하고 낙태를 하면 비정하다고 비난하는 모순적인 사회. 아이를 책임지는 사람을 비난하고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순적인 사회. 이것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입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상담소 전화로 전화가 왔다. 머뭇머뭇하면 도움이 필요하다며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물어보니 울음을 터뜨린다. 이제 겨우 18살 아이를 낳은 지 6개월이지만 누구도 그녀의 임신과 출산을 함께 해주지 않았고 힘들게 지방의 시설에서 출산을 한 후 양육 도움을 받으며 자립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설 생활이라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입양을 보내라고 권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생각하니 지금도 다시 마음이 아파온다. 비슷한 사례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은비가 있다. 2012년 당시 17살이던 은비 엄마는 아이와 부인을 두고 떠난 남편 없이 은비를 키웠다. 하지만 생활고로 막다른 길에 몰리자 은비 엄마는 결국 2014년 3월 보육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경기도의 한 아동보호시설에 17개월 된 딸을 맡겼고, 은비는 그곳에서 입양이 되었고 불행히도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됐다.
낙태와 입양. 두 단어는 미혼모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말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혼모들의 눈에 보이는 이 꼬리표들을 끊어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하여야 한다. 그 중심에 국가가 있어야 하고 우리 모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해나가는 동등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미혼모들을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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