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동환 기자] 15세기 말 역사상 최초로 대항해시대를 열고 식민지를 개척했던 포르투갈 제국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고 16세기 말 이후에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민지를 점령하고 제국을 확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전쟁을 거듭할수록 제국의 경제는 파탄 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당시 인구 백만에 불과했던 포르투갈은 기초체력이 약했고, 큰 제국을 다스리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또 영토 확장은 온 나라와 전 계층의 관심속에 이루어졌지만 영토 확장 후에는 귀족과 교회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었습니다. 일반 백성들의 삶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었고, 오히려 계층 간에 유지되던 부와 권력의 균형이 깨져버렸습니다.
특히 상공업자와 농민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는데 봉건 귀족들은 자본주의가 싹틀 수 있는 가능성을 용납하지 않았고, 귀족들의 횡포 아래 상공업자와 농민은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곧 병사들의 전투력 저하로 이어졌고 경제가 쇠락하면서 제국도 쇠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1578년 세바스티앙 1세가 후계자 없이 모로코 원정에서 사망하고 그의 삼촌인 추기경 엔리케가 왕위를 이었지만 1580년 결국 왕위가 끊기게 됩니다. 공석이 된 왕을 뽑게 된 귀족들은 이웃나라 스페인의 왕 펠리페2세를 선택했습니다.
수많은 식민지 개척 전쟁으로 재정이 고갈된 포르투갈은 펠리페2세의 재정지원 약속을 믿고 왕위를 맡겼고, 그후 이베리아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1580년 통합되었습니다.
펠리페2세는 포르투갈의 자치를 보장해 주었지만 재정 지원 약속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스페인 왕국의 부속 왕국으로 전락했습니다.
이 시기 포르투갈의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습니다. 신생 독립국 네덜란드였습니다.
네덜란드는 1648년 법적으로 독립이 인정됐지만 이미 80년 전인 1567년 독립전쟁 시작무렵 부터
사실상 독립했으며 조선업의 혁명과 우수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에 진출해 포르투갈의 무역 거점들을 하나둘씩 빼앗았습니다.
지난번 네덜란드편에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스페인 왕실은 포르투갈을 네덜란드로부터 지켜주기는커녕, 오히려 스페인의 한 지방으로 편입하려 했습니다. 이에 국가 복원 혁명을 일으켜 독립을 선언했지만 스페인이 인정하지 않자 독립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640년 영국의 지원을 받아 60년 만에 독립할 수 있었지만, 스페인에 합병되고 독립전쟁을 치르는
어수선한 시기에 식민지를 제대로 경영할 수 없었고, 그 사이 네덜란드가 포르투갈 식민지의 상당수를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요인이 쇠락의 원인이 되어 이후 꾸준히 내리막을 걷게 됩니다.
많은 식민지를 빼앗기고 경제가 위축된데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755년 리히터 규모 8.5~9에
달하는 대지진이 수도 리스본을 강타하게 됩니다.
국토 전체가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었고 전 해안지역이 초토화됐습니다.
직격탄을 맞은 수도 리스본은 인구 20만 중에 3~4만 명이 사망했고 궁궐을 포함한 주요시설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국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자연재앙까지 닥치자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지진 피해를 수습한지 몇 십 년 만에, 1805년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대륙 봉쇄령을 내리고 포르투갈에게 영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독립을 도와줬던 영국과의 전쟁을 거부했고, 이에 분노한 나폴레옹이 1807년 침공했습니다.
그러자 여왕 마리아1세와 아들 주앙6세는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도망을 갔고, 리우 데 자이네루를 임시수도로 하여 브라질 왕실 시대가 열렸습니다. 본국인 포르투갈은 영국의 원군과 프랑스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하고,1816년 마리아1세가 사망하자 주앙6세가 왕이 되었는데 그는 브라질을 식민지에서 포르투갈의 한 지역으로 승격시키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브라질이 제국의 중심이 되고 포르투갈이 식민지가 될 수도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포르투갈에 남아있던 영국군이 내정에 간섭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불안은 극에 달했고,결국 1820년
입헌군주제를 요구하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왕은 1821년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아들인 왕자 페드로가 섭정으로 브라질을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페드로 왕자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브라질 황제에 올라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브라질 식민지가 떨어져나간 겁니다.
이렇게 큰 식민지를 잃고 힘없는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19세기 들어 유럽에 기관총과 말라리아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모기가 들끓는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까지 탐험이 시작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서부 앙골라 식민지와 남동부의 모잠비크 식민지를 내륙으로 관통해 횡으로 연결하려 했고, 영국은 위에서 아래 즉,종으로 연결하려 하자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1890년 포르투갈이 굴복해 군대를 철수하고영국이 승리하면서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 확대는 멈추게 되었고 경제는 더욱 쪼그라들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후 장기적인 불황이 이어지자 1908년 왕을 암살하는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1910년 공화정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쿠데타로 16년 동안 9명의 대통령과 36명의 총리가 교체되었습니다. 1926년 쿠데타 이후 군부독재가 시작되었고 1974년 카네이션 혁명이라는 민주화 혁명으로 독재는 막을 내렸습니다.
1975년 아프리카의 앙골라와 모잠비크가 식민지에서 독립했고, 1999년 마지막 식민지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면서 500년 만에 작은 나라로 되돌아갔습니다.
포르투갈의 쇠락은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요인으로 이루어졌고, 근현대에는 정치적 혼란과
고질적인 산업기반의 부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제국에서 쇠락한 포르투갈을 보면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우리도 멈춰버린 국가가 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에는 다시 움직이는 국가로 스위스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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