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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출장 때문에 LX한국국토정보공사가 위치한 전주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 일이다.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부터 옆자리 남자가 책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남자는 2시간가량 되는 운행시간 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스마트폰만 보고 가던 나는 계속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고, 나만 뒤처지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려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제일 얇고 쉬운 책을 골랐다.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던 나에게 달리는 기차 안에서 집중해서 책을 보는 건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날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책은 내가 출장 가거나 외출할 때 항상 들고 다니는 소지품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읽지 않았지만 단지 책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들었다. 내가 더 가치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며 자존감이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좀 읽으라는 잔소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그걸 실천하는 사람을 드물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률이 95%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책을 손에 든 사람 보기가 더욱 힘들다. 각 나라의 월평균 독서량을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인데 반해 우리나라 독서량은 0.8권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참 책 안 읽는 나라이다. 책을 읽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지식을 넓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긍정적인 대인관계를 형성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한동안 책을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내가 좀 더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가지고 다니는 행동은 조금씩 책을 읽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베스트셀러 ‘인간관계론’의 저자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인간의 본성 중에 가장 근원적인 욕망을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라고 했다. 책은 단지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물론 책을 들고 다니는 것도 좋지만 읽기까지 한다면, 책은 당신에게 많은 것들을 줄 수이다. 우선 책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활용 가능한 수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준다. 책은 수천 년간 쌓여온 인간의 지식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러한 과정에서 내 업무에 적용 가능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수 있다. 또한 책에서 읽은 내용들은 타인과의 대화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준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의 경청하고 그와 유사한 사례를 책의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등 원만한 대인관계 형성을 위한 대화를 이어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해줄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교양서적이든 문학 서적이든 연간 11권 이상 책을 읽은 학생은 한 권도 읽지 않는 학생보다 평균적으로 수능 언어영역 점수가 19점, 수리영역이 8점, 외국어 영역이 12점이나 높게 나타났다. 창의성과 지식융합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시대에서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것은 일류대 졸업장보다 어쩌면 풍부한 독서량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책은 단순히 점수를 높이는 것보다 책을 읽는 사람 자체의 가치, 그리고 자존감을 높여준다. 매 순간순간 경쟁이 계속되는 사회 속에서 높은 자존감은 개인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책을 일 년에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나는 요즘 한 달의 두 권 정도는 소화하고 있다. 책을 들고 다니는데 그치던 것에서 이제는 보고 싶은 책도 생기고 그것을 보며 즐거움과 배움을 얻고 있다. 폼 잡기 위해 시작한 독서가 이제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을 좀 더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면 지금 당장 책을 들고 다녀라. 읽지 않아도 된다. 책은 단지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한국국토정보공사 손명훈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