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사상 최초로 정답이 정정된 것은 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에서였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가 서울대 교수였다는 점이 화제를 모았고 결국 정답이 2개가 됐다. 2008학년도 수능 때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의견을 구하기도 전에 한국물리학회가 수험생 문의를 받고 물리Ⅱ의 오류를 인정하고 논란으로 이어져, 버티던 평가원은 복수정답을 인정하고 원장이 사임했다. 이후 평가원은 이의신청에 대해 학회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몇 차례 수능 정답을 수정했다.
그런데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사상 초유의 빈칸 성적표가 학생들에게 배부되었다.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때문이다. 수험생들은 한 문제 때문에 과목 전체가 흔들렸다고 울분을 토한다. 생명과학Ⅱ는 자연계 최상위권이 주로 지원한다. 그래서 한 문제로 등급이 달라지고 대학이 요구하는 수능 최저등급을 못 맞추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평가원의 대응은 이런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 제기는 지난달 18일 수능이 끝난 직후였다.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이 잘못됐다거나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평가원은 오만했다. 처음부터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닫았다. 시늉은 했다. 관련 학회에 자문을 구했는데 문제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평가원 간부가 원장으로 있는 학회였다. 끼리끼리 출제하고 평가한 셈이다.
평가원은 “문항의 조건이 완벽하진 않아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타당성이 유지된다”며 오류 지적을 묵살하기도 했다. 평가원은 2008년 수능 복수정답 논란 때도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대학교수로서 “채점 전 소수의 학생이 이의제기했을 때 타당한 증거로 좀 더 일찍 검토했어야 한다”고 분연히 평가원을 비판했던 이가 이번에 사표를 쓴 강태중 평가원장이었다. 13년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책임을 얼버무리다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 것이다.
평가원의 묵살에도 수험생은 포기하지 않고 움직였다. 문항의 정답 결정 처분 취소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평가원은 있을 수도 있는 오류를 따져보는 대신 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국민 세금으로 대형 로펌을 선임했고 졌다. 수험생들은 이 과정에서 집단지성을 발휘해 여론을 환기시켰다. 해외 석학에게 이메일을 보내 의견을 구했고 답변도 받았다. 그런데 국내 관련 학과의 교수들은 단 한 명도 학생들의 이메일에 회신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것이 더욱 화가 난다.
문·이과 통합으로 처음 치러진 이번 시험은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조절에도 실패했다. 수학 1등급의 90%가 자연계일 정도로 문·이과 격차가 컸다. 이로 인해 자연계 수험생이 학교 수준을 높여 인문계 모집 단위로 교차 지원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도 평가원은 선택과목 유불리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정시 전략을 짜기 위해 사교육 기관으로 몰리고 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이렇게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