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모든 일은 사소한 데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큰 강이라 할지라도 근원을 더듬어 가면 작은 실개천에서 시작되듯, 큰일도 원인을 따지고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은 더욱 그러하다. 작은 실수가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달 19일 강남 개포동 개포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현장.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이 공사를 나누어 진행하는 곳이다. 이날 서울 전역에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눈발이 쏟아졌다. HDC현산이 공사를 맡은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하루 종일 이뤄졌다. 수많은 콘크리트믹서 트럭들이 눈발을 휘날리며 오갔다.
한 건축가에게 이를 문의했더니 화들짝 놀란다. 그는 “콘크리트가 물과 만나 화학작용을 통해 경화현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겨울철에는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전 물이 얼어버린다”고 지적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이뤄졌냐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현장의 붕괴 사고도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의 보온 조치가 원인이었을 관측에 힘이 쏠리고 있다. 결국 전국 곳곳의 HDC현산 공사 현장에서 이같은 일이 관행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최고급 브랜드 아파트를 짓는 건설 회사가 정작 기본기에는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광주에서 발생한 2건의 건설 현장 참사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HDC현산은 사실 아파트 건설보다는 자동차의 그림자가 더 짙게 배어 있는 회사다.
‘포니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한국 자동차산업의 선구자로 평가받던 정세영 당시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 형이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현대자동차 경영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HDC현산을 받은 것이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거의 평생을 바치다시피 한 현대자동차를 떠나는 이임식에서 회사 사가를 부르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 못지않게 이를 서운하게 여긴 이가 아들인 정몽규 회장이었다고 전한다.
정몽규 회장은 아버지가 명예회장이 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회장으로서 현대자동차를 국내 제일의 자동차 기업으로 위상을 다지는 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대그룹 내 후계 구도로 인해 아버지부터 자신까지 열정을 쏟았던 현대자동차를 포기하게 됐으니, 그 심사가 편안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여겨진다.
HDC현산에 이 같은 그의 정서가 이입되어서일까. 정몽규 회장은 사업 다각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특히 2019년의 아시아나 인수 시도가 그렇다. 이른바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해 현대차를 빼긴 것에 한을 풀고자 했다. 이러다 보니 본업인 건설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당연 공사 현장에서 기본기는 공염불이 될 수 밖에 없는 노릇.
결국 사소한 실수가 잇딴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 것이다. HDC현산이 일순간 공중 분해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만큼 시장은 기업에 냉혹하다. 또 거기에는 그 원인을 제공하는 단초가 있기 마련이다. 정몽규 회장이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