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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우리 돈 약 850조 원의 연기금을 운영 중인 유럽 최대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의 자산운용사인 APG가 국내 대기업 10개 사에 탄소배출 감축 등 기후 위기에 적극 대응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왔다. 국내 유수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탄소 감축에 나서지 않는 경우 보유 중인 APG 지분매각 등 투자를 철회하겠다는 글로벌 ‘탄소세’ 압박이자 경고인 셈이다. 탄소 중립이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국내 경제와 산업의 생사여탈(生死存亡與奪)과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좌우할 만큼 화급하고 기업의 명운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할 만큼 시급한 현안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은 이미 오는 2023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도입해 3년 동안은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을 보고만 받은 뒤, 2026년부터는 탄소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의 수출품에 대해 수입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Tax)를 징수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미국 의회에서도 오는 2024년부터 화석연료,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에 우선적으로 탄소 국경세(Carbon Border Tax)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는 등 친환경·탈탄소(脫炭素)를 빌미로 한 세계 주요 국가의 탄소 무역 장벽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경각심을 갖고 긴장감을 가다듬어 긴밀한 협력과 공조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탄소 감축과 기후 위기 대응과 정책집행에 가일층 속도를 높여야만 한다.
APG는 지난 2월 16일 APG가 투자한 삼성전자, 현대제철, SK, SK하이닉스, LG화학, LG디스플레이, 롯데케미칼, 포스코케미칼, LG유플러스, SK텔레콤 등 10개 사를 ‘기후 포커스 그룹’으로 선정하고 이들 기업에 ‘기후 위기 대응 및 탄소배출 감축 전략의 혁신적 실행에 대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서한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APG 서한을 보면, 지난 2020년 기준 애플의 매출액 대비 탄소 배출량이 0.3%인데 반해 삼성전자는 8.7%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애플은 오는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RE100(전력량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환 | 100% Renewable Energy)에도 가입했지만, 삼성전자는 탄소 중립 선언도 RE100 가입도 하지 않았다고 짚는 등 삼성전자·SK텔레콤·LG화학 등 10개 사가 동종 업계의 다른 글로벌 기업 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다고 지적하고 적극 대응을 촉구함으로써 해당 기업들이 기후변화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APG 서한의 의미와 무게가 결단코 가볍지 않다고 보는 근거는 한국전력의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지적하며 지분을 실제 매각한 바 있는 데다 향후 자금을 투자한 주주로서 책임투자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주주 관여'로 이어나간다는 방침도 밝혔기 때문이다.
탄소 중립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도도히 흐르는 시대적 조류이자 화두이며 대세임은 다시 물을 필요도 두말할 가치도 없다. 최근 탄소 감축의 중요성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선진 국가와 기업들이 실제 감축 행동에 들어가는 단계다. 유럽연합(EU)은 2023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해 4년 후인 2026년부터는 철강 등 5개 부문 수입품에 탄소 국경세를 거두어들일 계획이다. 유럽연합(EU) 역내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비용을 부과하는 사실상의 추가 관세, 무역 장벽을 구축한 것이다. 게다가 유럽연합(EU)은 최근 해외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기업과 보조금을 받지 않은 가맹국의 기업이 경쟁하는 것을 ‘경쟁의 왜곡’으로 본다는 전제하에 가맹국(EU)이 아닌 제3국 기업이 유럽연합(EU) 시장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가맹국의 기업을 인수·합병하거나, 가맹국의 사업에 참여할 때 최근 3년간 유럽연합(EU) 권역 외의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은 보조금 내역 모두 다를 신고하고 유럽연합(EU)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제하는 「역외보조금 규제법」을 발표했다.
미국 등 세계 주요 20여 개국도 ‘탄소세’ 도입을 추진하거나 검토 중이다. APG 등 세계적 투자사들의 투자 결정 요소도 기후 위기 대응으로 급변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무려 10조 달러(우리 돈 약 1경2천조 원)의 돈을 굴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 Rock)을 비롯해 노르웨이 등의 국부펀드와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 선진국의 연기금들도 잇따라 탈탄소(脫炭素) 실적이 부진한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의지를 밝히고 있다. 또한,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기업 소비전력을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 100’을 선언하고 관계 협력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2월 2일 한국무역협회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표한 ‘무역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월 28일 기준으로 지난 한 해 동안 총 28개국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206건의 수입 규제를 적용했다. 코로나19 이전에 전 세계 수입 규제 신규 조사가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한데다 미·중 분쟁과 더불어 미국,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고 있어 당분간 보호무역 기조가 완화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수출주도형 경제인 우리나라로서는 국제적 흐름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탄소 감축과 기후 위기 대응력이 국가와 기업 경쟁력의 중추가 되고 핵심이 된 것이다. 친환경·탈탄소(脫炭素) 산업구조 개선에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이다.
2022년 9월 25일부터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시행될 예정이고, 폐기물 감량, 청정에너지원으로 ‘수전해 수소(그린 수소)’ 활용 확대, 산림·해양·하천 등 흡수원 조성,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 상용화 등을 통해 2050년 넷 제로(순 배출량 0)를 향한 청사진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는 2018년 온실가스 총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가 이미 국제사회에 공표되었다. 여전히 계속되는 국제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참으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친환경·탈탄소(脫炭素)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에너지·환경정책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에서 2050 탄소 중립을 위해 필요한 산업계의 전환비용을 추산한 결과를 살펴보면, 2022~2050년까지 연평균 7.7조 원의 설비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다. 그러나 2019년 실제 우리나라 산업별 유형자산 투자액을 들여다보면 반도체·디스플레이업종은 33.7조 원, 정유·석유화학업종은 18.7조 원, 철강업종은 5조 원 등 광업 및 제조업 전체 투자는 100조 원에 달한다. 이에 비해 7.7조 원은 늘 투자해온 재원의 8% 정도의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어렵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도전해 볼 만 하지 않는가 싶다.
무엇보다도 탄소 중립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만 할 길이자 준엄한 역사적 명령이자 엄중한 시대적 요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산업계도 거역할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과 그칠 수 없는 도도한 시대적 조류로 무겁고 진중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산업계의 동참 없이는 2050 탄소 중립은 요원할뿐더러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은 상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면 경쟁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팽팽한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갖고 인식의 전환과 기회로 반전시키려는 긍정적 자세로 탄소 중립의 대장정에 과감히 나아가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