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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자동차 브랜드가 있다. 스웨덴의 볼보다. 100년 넘는 역사를 지켜오면서 자동차 안전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3점식 안전벨트, 보행자 추돌 방치 시스템 등을 꼽을 수 있다.
아픈 역사도 있다. 미국 포드에 팔렸다가 다시 중국 지리자동차에 넘어갔다. 하지만 외국 자본을 등에 업고 고급차 이미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다. 지리차가 엄연히 주인이지만 스웨덴 국민기업으로 인식 돼 있다.
우리 나라에는 볼보의 한때와 운명이 비슷한 쌍용차가 있다. 두 번씩이나 외국 자본에 팔린 점이 판박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볼보가 운명이 좋게 바뀌었는데 쌍용차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차가 주인이던 시절에 쌍용차는 알짜 기술을 야금야금 뺏겼다. ‘눈먼 장님’과 같은 신세여서다. 인도 마힌드라는 수억달러의 기술투자를 한다고 큰 소리쳤지만 말뿐이었다. 오히려, 벼랑 끝 전술로 정부의 자금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혈안이 됐다. 정부가 너무 나섰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미 자본주의와는 달리 국가 시장을 주도하는 환경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도 있지만, 결국은 ‘비시장 실폐’로 귀결된다. 정부가 자원 배분의 조건인 효율성과 형평성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앞선 볼보 매각 과정에서는 스웨덴 정부는 철저히 시장 논리를 고수했다.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이를 지켜보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그게 오늘날의 볼보를 만들었다.
다시 쌍용차 얘기로 돌아와 보자. 에디슨모터스의 쌍용차 인수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새우가 고래를 품는 기적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허나, 새우가 고래를 품는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섰으면 어떠했을까.
에디슨모터스는 주채권자인 KDB산업은행에 수차례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연이는 쌍용차 매각 파행은 분명 시장 개입에 따른 실패라는 게 중론이다. 그 시장 개입이라는 게 번지수를 못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먹튀 자본을 만들고 헛된 곳에 돈을 쏟아 부었다.
정부가 나서야 할 곳은 정작 따로 있다. 자원배분 조건의 한 축인 형평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에디슨모터스는 현재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허나 전기차 기술에 관해서는 나름 위치를 찾아가고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냉혹한 시장에서도 약자를 위한 형평성은 지켜져야 한다. 그게 시장의 효율성을 극대할 수도 있다. 에디슨모터스가 롤모델로 삼는 테슬라는 2003년 창립 이래 2017년까지 수십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생존 전망마저 불투명했다. 시가총액 1조달러가 넘는 알짜기업이 된데는 불과 수년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