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일보] 최근 상장사들의 감사보고서가 연달아 공개되며 '의견거절', '감사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 등의 감사 의견으로 상장폐지의 위기에 몰린 회사의 상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감사 회계법인들은 통상적으로 "감사 증거가 미비했다", "회계 처리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라는 이유로 감사 의견을 '거절',로 내거나 '한정' 의견을 부여한다.
감사 결과에 앞서 상장사가 들이는 감사 의견 '적정'을 위한 각고의 노력, 영업적자를 지속하는 상황에서도 '상장폐지'를 면하기 위한 불가피한 감사 비용의 지출 등을 들여다보면 "사업하기 힘들겠다", 사업 중에서도 "상장사를 경영하는 것은 정말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회계 처리의 모호성이 있는 자산을 소유하고 이것을 주요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회사일수록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받아들기가 어려운 양상이다.
예를 들어, 회사의 자산 중 대다수가 미술품이거나, 개발 중인 신약 물질에 근거한 경우 감사법인이 회계처리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생긴다.
문제는 감사인의 난해함과 모호함의 결과가 부정적 감사 결과로 이어져 상장사에겐 큰 타격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소규모 상장사일수록 회계 처리 인력도 부족하기 십상이고, 체계적인 감사 준비가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특히, 앞서 말한 모호한 자산 가치 평가와 관련해 상장사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일 내에 회계법인 측이 요구하는 자료를 모두 제공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모 바이오기업의 예를 보면 신약물질의 가치를 충분히 계상해 회계에 반영해도 법원의 인가 등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계감사 의견을 '거절'로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회사는 감사의견 거절 코스닥 시장에서 오랜 기간 주식거래가 정지됐고, 수천억원에 이르는 신약 치료물질에 대해 무형자산 가치평가를 법원을 통해 인가받았다.
이후 해당 법인은 다음 사업연도 감사보고서에서 '적정'의견을 받아들 수 있었지만, 회사의 주식이 오랜 기간 거래가 되지 않아 겪어야 했던 주주들의 고충, 회사 측이 본업에 앞서 회계 감사를 위해 했던 많은 비용과 조처는 누가 보상할 수도 없는, 회사와 주주들이 떠안아야 했던 피해다.
모 상장사의 한 임원은 "회계법인은 포렌식 감사부터 재감사까지 많은 비용을 요구할 수 있어 최고 '甲(갑)'의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다수 상장사 관계자들은 "감사 과정에서 감사인의 주관성은 충분히 개입된다"고 보고 있다.
핵심은 상장사가 감사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근거 자료가 됐든, 비용이 됐든 상장폐지 이슈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힘쓴다.
본 감사 전 감사보고서의 '적정' 의견을 위해 타 회계법인을 통해 자문을 받는 상장사의 노력에도 '의견 거절'이라는 감사 결과는 나온다. 해당 상장사 임원들은 "정확한 사유 없이 회계법인의 주관성에 기인한 부정적 감사 결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회계 감사를 담당하는 여러 기업의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감사에 있어 주관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상장사들은 '코로나19'에 직면하면서 대체로 수익성에 타격을 입고, 지난해부터 반등에 나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각 분야에 본업에 충실하기도 바쁜 와중에 감사 시즌마다 회계법인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들이 요구한 모든 회사의 자료를 제출하고 수억원의 비용을 냈지만, 감사보고서 '의견거절'을 당한다. 이를 위해 재감사에 나서 많게는 10배의 비용을 추가로 회계법인에 주고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해야 한다.
사업하기 참 힘들어 보인다. 상장사는 더욱 그렇게 보인다. 상장 여부에 따라 많은 투자금이 오갈 수 있는데, 회사의 본업을 보고 투자에 나섰던 많은 개인투자자는 예상치 못한 부정적 감사 이슈까지 견뎌야 한다.
1일 0시 기준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발표에 의하면 코로나19 확진자는 1337만 5818명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대한민국 인구수인 5162만 8117명으로 인구의 4분 1 이상이 확진자가 된 상황으로,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지는 감염병)' 수준으로 전환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 가운데 상장사들의 기업 경영에 영향을 주는 것이 '코로나19'라는 환경보다 회계법인의 '슈퍼 갑질'로 보인다. 감사 시즌마다 들려오는 상장사들의 호소에 회계법인은 윤리적 자성이 필요한 때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7일 회계법인의 감사품질 제고를 위한 역량 강화 유도, 감리 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한 회계 감독 선진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회계 투명성과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찾기 위해 금융감독원도 실질적으로 회계법인의 감사 과정 개선에 힘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