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정상회담서 40조 넘는 대미 투자 약속…미-일 철강 관세 합의는 뒷통수
반도체 보조금・철강 232조・세탁기 세이프가드 무역현안 순방 통해 풀릴지 주목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경제적 공조가 주요 의제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통해 대미 무역현안도 해소될지 주목된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재계가 반도체 중심의 대규모 미국 투자를 약속했지만 이후 미-일 철강 수입관세 절충 합의만 이뤄져 국내 철강수출이 불리해지는 등 반대급부가 부족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도 일부 국가는 미국시장 개방 논의가 빠졌다며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반면 한국은 적극적 우방을 자처하고 있어 경제적 실리도 챙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이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40조원 넘는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순방일정에서는 추가 투자보다 관련 내용을 구체화하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는 작년 정상회담 때에 비해 현재 글로벌 금리인상과 자본시장 위축, 인플레이션 파장 등으로 투자환경이 나빠졌다.
삼성전자만 해도 미국 투자를 약속한 파운드리 분야 B2B 수요는 견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디바이스 기기 등의 수요는 불확실성이 만만찮은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당초 계획을 고수해 상반기 내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에 착공한다면 전보다 가중된 리스크를 감수하는 셈이다.
국내 기업들이 대미 투자의 적극성을 보이는 반면 상대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얻는 혜택은 약해 보인다. 일례로 바이든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520억달러(약 66조원) 반도체 보조금은 로컬 기업으로 지원대상을 한정하라는 인텔 등 자국 기업의 요구가 높아 삼성전자 등이 공유하게 될지 불투명하다.
작년 정상회담 이후 미-일 철강 수입관세 합의는 뒷통수를 맞은 격이다. 지난 2월 미국은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일본산 철강 수입관세를 완화하는 데 합의했다. 이로써 관세를 적용받지 않게 된 일본산 철강제품의 대미 수출이 증가해 국내 수출이 불리하게 됐다. 국내 정부 및 철강업계도 국내 철강재에 적용되는 232조 관련 미국과의 재협상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현안으로 남아 있다.
국내 철강업은 지난 2018년 미국과 관세 대신 263만톤 한도의 무관세 수출이 가능하도록 쿼터제에 합의했다. 상대적으로 관세를 적용받은 일본산에 비해 선방한 협상 결과였지만 올해 미-일 신규 합의로 상황이 역전됐다.
그간 정부는 한국이 미국에 고품질 철강을 공급하는 공급망 협력국이자 한-미 FTA 등으로 맺어진 긴밀한 경제·안보 핵심 동맹국임을 강조하며 한국산 철강에 대한 232조치 개선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줄곧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재계는 이번 순방일정에서 관련 무역조치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대미 무역현안에는 세탁기도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로 세탁기 수출의 쿼터 제한을 받고 있다. 국내 정부는 세이프가드 조치 중단을 위해 WTO에 제소했고 지난 2월 승소했다. 하지만 미국이 상소할 가능성이 있어 세이프가드 해제 여부가 불확실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미 수년간 무역 분쟁 해결 절차를 거치며 세이프가드 조치 아래 있었다. 무역조치 불이익을 피하려 현지 세탁기 공장 투자도 감수해야 했다. 삼성의 파운드리 투자에다 LG 역시 대미 전기차 배터리 투자를 약속한 상태에서 이번엔 미국으로부터 희소식이 나올지 시선을 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임기 첫 아시아 순방 일정에서 IPEF를 공식 출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잠시 보류했던 중국 견제를 재개한다. 한국은 IPEF 발족 멤버에 참가할 것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최근 중국 정부는 한국이 IPEF에 반대해야 한다며 신냉전이 일어날 위험을 언급하는 등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IPEF 가입 시 제2 사드와 같은 후폭풍도 염려되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 호주 등이 IPEF 참여에 적극적인 반면 말레이시아 등 몇몇 국가는 아직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 이들 국가는 미국이 IPEF 논의에서 정치적 공조만 강조할 뿐 무역・투자에 관한 경제적 협정의 내용이 부족하다며 불만을 내비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일각은 중국과의 갈등을 무릅쓰는 만큼 IPEF 가입에 따른 실익도 분명하게 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