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최저임금법·중대재해처벌법, 인력 부족 현상 가중 시켜"
정부 규제, 필요한 곳엔 적용 안돼…'기술 유출 방지' 대책 촉구
[매일일보 이용 기자] 현행 노동정책과 과도한 정부 규제가 벤처 바이오 기업의 사업 역량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돠 ESG경영 도입 등으로 안전관리사와 EGS전문인력을 필수 채용하면서 정작 신약 개발에 참여할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차세대 유망사업으로 신약연구개발과 의료 플랫폼을 선정하면서 벤처 바이오 업계는 관련 사업 확대 채비에 나섰다. 업계는 이를 위해 정부의 노동정책 유연화와 규제 완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업계는 특히 최저임금과 중대재해처벌법이 가뜩이나 전문인력 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벤처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산직 급여가 늘어나면서 생산직 추가 채용은 물론 전문인력 채용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연구시설 확충 등도 미루기 일쑤다.
최근 메드팩토, 알테오젠, 제뉴원사이언스 등 기업들은 신사업 추진을 위해 전문가 영입에 집중하고 있다.
해당 회사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연봉과 복지를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에서 보통 8000만원대 연봉을 받는 이들을 경력직으로 채용하기 위해 1억원 후반까지 연봉을 높여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핵심 사업을 위해 회사가 다소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액 연봉자를 무턱대고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건비 부담으로 다른 분야 인력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안전관리자는 업계의 고민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경력 3년 이상인 안전관리자의 연봉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보다 30~40% 오른 7000만~8000만원 수준이며, 타 업종은 이보다 조금 낮은 정도다.
한 바이오 AI기업 관계자는 “벤처기업은 연구비를 올리면 생산 인력이나 복지를 축소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적절한 선에서 노사가 타협을 보고 있다”며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산직 채용이 부담스러워지고, 고연봉 안전관리자까지 채용하면 전문 연구원을 채용할 수 없다. 개발 역량이 감소하면 외부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아 직원과 복지를 감축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윤 정부가 국정과제로 언급한 ‘ESG 경영 확대’ 또한 업계의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일단 ESG 경영이 정책화되면 안전관리자에 이어 ESG 관련 담당자도 채용해야 해서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ESG경영 등 정부가 도입해야할 과제에는 속도를 내지만 정작 규제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외면하고 있는 점도 벤처 바이오기업의 애로사항 중 하나다.
의료 플랫폼 업계에서는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비대면 진료 확대’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규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은 현행법 저촉 소지가 있다”며 사실상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을 반대해 온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불법인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 서비스는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상태다. 그러나 코로나19 종식과 함께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관련 플랫폼 기업들은 사업을 종료해야 한다.
한 의료 플랫폼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커지면서 미국 독일 등 글로벌 기업들이 관련 플랫폼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국내 관련 사업이 규제로 침체 된 사이, 나중에 규제가 풀릴 경우 외국 기업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에서는 최근 롯데, CJ 등 대기업의 바이오 분야 진출에 대해 정부가 규제를 적용해 벤처 바이오 기업의 기술 유출을 보호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기업들은 타 기업 전문가를 영입하고 관련 기업을 통째로 인수해 기존 업계와의 기술 차이를 순식간에 좁히고 있다. 직원에게 높은 연봉을 약속하기 힘든 벤처 기업은 경력 직원의 이직을 막기 어렵다며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판교의 한 벤처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은 각종 노동 이슈에 민첩하게 대응 가능해 바이오 산업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라며 ”과거 대기업이 치킨 산업에 진출했을 때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섰지만 사업의 공공성이 우선되는 이 업계는 그것조차 기대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