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전문가 주축...업권별 규제 개선안 타당성 검토 돌입
금산분리 완화 등 발목 잡힌 신사업 진출 길 열릴지 주목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윤석열 정부와 금융당국이 금융권을 옥죄었던 각종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나열한 것만 허용하는 이른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었다면, 원칙에 위반되지 않으면 허용한다는 기조인 ‘네거티브’ 식 금융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게 주된 골자다.
무엇보다 금융사의 비금융 사업 다각화를 가로막았던 금산분리 규제 등 걸림돌을 대거 손볼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는 1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1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열고 본격 활동을 개시했다. 해당 회의에는 경제·금융·디지털·법률·언론을 대표하는 민간 전문가가 배치됐고, 당국과 금융권 간 가교 역할도 맡게 된다.
앞서 금융위는 은행·증권·보험·신용카드·저축은행·핀테크 등 각 업종 협회·단체 등에 ‘풀고 싶은 규제를 가감 없이 전달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 결과, 각 업권으로부터 규제 개선을 요청받은 건의사항만 230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규제혁신회의는 이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타당성의 우선순위를 검토해 ‘윤석열 표 금융 규제 개혁안’을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안팎에서는 최종안에 50~100개가량이 담기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금융권은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규제 혁신을 내걸며 발빠른 개혁 의지를 다진만큼 기대감을 품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금융규제혁신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도 개혁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리 금융산업에도 BTS와 같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하는 게 규제혁신의 목표"라고 말했다.
우선 금융권은 금융위가 성역처럼 여겼던 금산분리 문턱을 어디까지 낮출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금산분리는 재벌 기업이 은행을 손에 넣은 뒤 사금고처럼 오용하는 일을 막기 위해 1995년 도입됐지만 현재는 금융사가 비금융업으로 사업 다각화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은행 중심인 대형 금융지주가 “예대(예금-대출) 금리 차이를 키워 이자 장사로만 돈을 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 배경이다.
금융위는 우선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15% 넘게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한 은행법 제37조에 칼을 댈 것으로 보인다. 이 조항에 따라 은행이 주식을 15% 이상 보유한 회사는 법상 자회사가 된다. 현행 은행법 감독 규정상 은행의 자회사가 될 수 있는 업종은 금융투자업 등 15개뿐이다. 은행의 비금융 사업 다각화를 막는 핵심 법 조항이다.
이 문턱이 낮아지면 은행은 금융업 혁신의 열쇠로 평가받는 데이터·인공지능·플랫폼 등 정보기술(IT) 사업에 직접 진출하거나 관련 회사를 인수할 수 있게 된다. 은행권에서는 자기자본의 1% 이내에서 다양한 업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던 빅테크 공세에 휘둘리던 금융권은 규제완화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잡힐 거란 기대도 크다.
금융권은 그동안 공통적으로 빅테크와 '기울어진 운동장' 규제가 신사업 추진에 상당한 애로사항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각 금융권은 업권별로 역할과 사업에 대해 규제를 해놓은 법이 마련된 반면, 빅테크 등은 전자금융법에 속해 사실상 최소한도의 규제를 받은 만큼 금융권에도 합리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선 카드사 등이 소속된 여신전문금융업권은 신사업 추진에 부수업무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입장이다. 가맹점 수수료 체계 등은 다른 TF를 통해 논의에 나서고 있는 만큼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는 사업 확대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여신업계 한 관계자도 "이번에 구성된 혁신회의에서는 사업 추진에서 걸림돌이 되는 부분을 직접적으로 완화해줄 것을 건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의 경우 자회사 업종 제한과 '1사(社) 1라이센스' 제한 완화 등을 희망하고 있다. 1사 1라이센스의 경우 같은 보험사를 여러 개 자회사로 두지 못하게끔 규제해 보험 계열사를 하나로 합병하거나, 같은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회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유지했다. 이 밖에 과잉 진료에 의한 실손보험 적자 확대를 해결할 청구 전산화도 급선무로 꼽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물 안 개구리’를 넘어 해외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금융사를 만드는 데 규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