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보라 기자]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4조원을 넘는 자금이 은행을 거쳐 해외로 송금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27일 ‘거액 해외송금 관련 은행 검사 진행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열고 “대부분의 송금거래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무역법인 계좌로 집금돼 해외로 송금되는 구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우리·신한 등 2개 은행을 상대로 현재까지 파악한 이상 외화송금 거래 규모는 총 4조1000억원(33억7000만달러)이다. 당초 이들 은행이 금감원에 보고한 규모인 2조5000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거액 해외송금에 관련된 업체 수도 당초 보고된 8개 업체에서 22개 업체(중복 제외)로 증가했다.
수상한 해외 송금거래 조사는 지난달 우리·신한은행이 자체 감사에서 비정상적인 외환 거래 사례를 포착해 금감원에 보고하면서 시작했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달 22일 서울의 한 지점에서 최근 1년간 9000억원에 달하는 비정상적인 외환거래가 이뤄진 사실을 내부 감사에서 포착하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신한은행도 2개 지점에서 총 1조6000억원 규모의 비정상 해외송금 사례를 포착하고 금감원에 관련 사실을 알렸다.
금감원은 지난달 23일 우리은행, 30일 신한은행을 상대로 현장 검사에 착수해 검사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은 현장 검사에서 이들 업체가 금괴 등 수입 물품 대금 결제로 위장해 송금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증빙서류와 송금자금 원천 확인을 통해 거래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왔다.
검사 결과 금감원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국내 무역법인의 대표이사 등 다수의 개인 및 법인을 거쳐 해당 무역법인 계좌로 모인 뒤 수입대금 지급 등의 명목으로 해외법인에 송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송금 대상 해외법인은 해외 가상자산거래소가 아닌 일반법인들로 파악됐다. 특히 법인의 대표가 같거나 사촌 관계이고, 한 사람이 여러 법인의 임원을 겸임하는 등 특수관계인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계좌 간 자금흐름 추적 결과 특수관계인으로 보이는 업체들이 기간을 달리해 송금하는 등 서로 연관된 거래들이 확인됐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들 업체의 송금이 국내 암호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거래일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자금과 일반적인 상거래를 통해 들어온 자금이 섞여서 해외로 송금되는 사례도 있었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이 2021년 5월 3일부터 올해 6월 9일까지 5개 지점에서 931회에 걸쳐 총 1조6000억원(13억1000만달러)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이 취급됐고, 신한은행에선 2021년 2월 23일부터 올해 7월 4일까지 11개 지점에서 총 2조5000억원(20억6000만달러)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이 취급된 것으로 금감원은 파악했다.
이들 중 3개 업체는 송금 자금에 정상적인 상거래 자금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금감원은 이런 해외송금 행태가 추가로 드러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모든 은행을 상대로 우리·신한은행 사례와 유사한 거래가 있는지를 자체 점검하고 그 결과를 이달 말까지 제출하도록 지난 1일 요청한 바 있다. 점검 대상 거래는 △신설·영세업체의 대규모 송금거래 △가상자산 관련 송금거래 △특정 영업점을 통한 집중적 송금거래 등이다.
주요 점검 대상 거래규모는 현재 검사 중인 거래를 포함해 44개 업체 총 53억7000만달러 수준이라고 금감원은 밝혔다. 이 부원장은 “금감원 검사 및 은행 자체점검 결과 등을 기초로 이상 외화송금 업체가 추가로 확인되는 경우 관련 내용을 검찰 및 관세청에 통보해 수사 등에 참고토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울러 은행 자체 점검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추가 검사 등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