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줄었지만 다중채무 비중 22.4%...10년만에 최대
중·저소득층·젊은층 중심 부실 확산..."선별적 지원 시급"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작년 말 이후 가계대출이 진정세로 돌아섰지만, 금리 상승기에 채무 불이행 등 부실 가능성이 가장 큰 '다중채무자(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의 비중이 급증하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 다중채무자는 약 446만명에 이르고, 특히 금융기관 중 저축은행과 30대 이하, 중·저소득 계층의 다중채무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연말까지 대출 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다중채무자들이 속출할 경우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온다.
16일 한국은행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상 약 100만명 패널의 신용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자 가운데 22.4%가 다중 채무자였다.
작년 말(22.1%)보다 비중이 0.3%포인트(p) 늘어난 것으로, 집계가 시작된 2012년 이후 최고치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1분기 가계부채 DB 표본 데이터로 전체 가계대출 차주 수를 추정하는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작년 말 기준 전체 차주 수(1989만4000명)에 이 비중(22.4%)을 적용하면 약 445만6000여명이 다중채무자인 것으로 추산된다. 차주(대출자) 수가 아니라 대출 잔액 기준으로 할 경우 다중채무의 비중은 31.9%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들어 전반적으로 가계대출은 줄었지만 다중채무자 비중이 오히려 커졌다"며 "코로나 여파가 길어지면서 자영업자 등 한계에 이른 차주들이 저축은행을 비롯한 2금융권 등에서까지 돈을 빌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한은의 '가계신용' 통계상 가계대출 총액은 작년 말 1754조2000억원에서 올해 1분기 1752조7000억원으로 1조5000억원 감소했다. 가계빚은 줄고 있지만 다중채무자 비중은 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금융권별 다중채무자 비중을 보면 저축은행의 경우 1분기 말 대출잔액 기준으로 76.8%, 차주 수 기준으로 69.0%가 다중채무 상태였다. 모두 작년 말(75.9%, 67.5%)과 비교해 0.9%포인트, 1.5%포인트씩 다중채무자 비중이 늘었다.
은행의 다중채무자 비율은 1분기 말 대출잔액과 차주 기준 각 27.6%, 25.4%로 집계됐다. 한 분기 사이 다중채무 차주는 0.2%포인트 높아졌다.
1분기 현재 다중 채무자의 전체 빚을 연령대로 나누면, 40대의 비중이 32.6%로 가장 컸고 이어 50대 28.0%, 30대 이하 26.8%, 60대 이상 12.6% 순이었다. 40대의 경우 비중이 작년 말보다 1.1%포인트(33.7→32.6%) 떨어졌지만, 30대 이하와 50대는 0.6%포인트(26.2→26.8%)와 0.2%포인트(27.8→28.0%)씩 늘었다.
아울러 다중채무자 대출 잔액을 차주의 소득 수준에 따라 분해한 결과, 고소득자(소득 상위 30%)가 65.6%를 차지했고 중소득자(소득 30∼70%)와 저소득자(소득 하위 30%)의 비중은 각 25.0%, 9.4%였다.
2021년 말보다 고소득자 비중이 0.3%포인트(65.9→65.6%) 축소된 반면, 중소득자와 저소득자는 각 0.2%포인트(24.8→25.0%), 0.1%포인트(9.3→9.4%) 오히려 커졌다.
이처럼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중·저소득층, 30대 이하 젊은 층의 다중 채무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금리 상승의 충격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우려가 높다.
한은은 일반적으로 다중채무자 가운데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상태인 대출자를 '취약차주'로 분류하고 있다.
최근 금융 안정 보고서에서도 한은은 "앞으로 완화적 금융 여건이 정상화(금리 상승)되는 과정에서 대내외 여건까지 악화할 경우, 취약차주의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그동안 대출을 크게 늘린 청년층과 자영업자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윤창현 의원도 "다중 채무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 청년, 저소득층이 늘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이런 취약 차주들의 고금리 대출을 재조정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